케데헌·킹오킹 신드롬…얼굴 없는 숨은 공신은[씨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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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와 디킨스, 그를 잇는 이병헌 목소리
“연기 본질은 공감, 도전 이유는 아들”

이번엔 K애니가 중심. 사진 I 스타투데이DB

이번엔 K애니가 중심. 사진 I 스타투데이DB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공개 하루 만에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프랑스, 독일 등 22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더니, 일주일 넘게 왕좌를 지키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또 한 편의 화제작도 애니메이션 영화다. 북미에선 이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흥행을 넘고 금의환향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he Life of Our Lord)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순수 국내 자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다.

그리고 그 심장엔 ‘얼굴 없는’ 이병헌이 있다. 단순한 성우가 아닌, 감정을 설계하며, ‘목소리’라는 새로운 언어로 세계와 소통 중인 그다.

사진 I 넷플릭스, 스타투데이DB, ㈜모팩스튜디오

사진 I 넷플릭스, 스타투데이DB, ㈜모팩스튜디오

먼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령들로부터 인간 세계를 지키는 인기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령 세계에서 탄생한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와 인기 경쟁을 벌이며 그들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담는다. 소니 픽처스와 넷플릭스가 합작한 외피는 미국산이나 서울의 거리와 음식, 정서까지 생생히 담긴 알맹이는 K컬처 콘텐츠다.

실제로 메기 강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 제작에 앞서 10명의 스태프와 한국을 찾아 세밀하게 기록했을 정도다.

대표작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는 이병헌은 이 작품을 봤을 때도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인 건 알았지만, 이걸 주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놀라웠다. 이게 된다고? 어떻게 구현될지,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지 아무것도 확신할 순 없었다”고 했다.

미국에 머물던 중 소니픽처스와 아 작품 관련 미팅을 갖게 됐다는 그는 강한 흥미로움에, 이보다 더 강력한 뿌듯함으로 과감히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다. 질문도 많았고, 분석은 깊었고, 작업 열정은 넘쳤다는 후문.

출연진 중 유일하게 영어와 한국어 더빙을 모두 소화하기도 했다. 기획 단계에서는 영어 더빙에만 참여하기로 돼 있었지만, 추가로 한국어 더빙까지 하게 된 것. 한국어 더빙은 하루 만에 끝냈지만, 영어 더빙은 3번에 나눠 진행했다. 감정과 표현, 뉘앙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

사진 I 넷플릭스

사진 I 넷플릭스

그가 연기한 ‘귀마’는 주인공들인 K팝 헌터스들과 대척점에 있는 최악의 악,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지닌 동시에 어딘가 짠한 구석이 있는 개성파 어둠의 마왕이다.

오히려 그 지점이 좋았다는 그는 “어설프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다”면서 “모든 사람은 수천 가지 성격을 지녔다. 그중 극히 일부라도 내 안에 있다면, 그 조각을 확장하는 게 연기”라며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귀마’에도 녹여냈다.

그는 밑그림뿐인 화면 속 빈 공간을 상상력과 공감으로 채워냈고, 감정의 진폭을 조율하며 생생한 연기를 펼쳤다.

그는 ‘케데헌’의 글로벌 저력에 “한국적인 이야기와 기획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것이 놀랍다. 함께 참여한 입장에서 보람차고 기분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도전에는 또 하나의 동기가 있었다. “아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거의 없다”는 아버지로서의 고민이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함께 본 아들은 “아빠가 누구야?”라는 질문 끝에 (이병헌이 빌런을 연기한 탓에) “난 그만 볼래”라는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였고, 이병헌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프론트맨이나 데몬 말고, 좋은 사람 역할을 아들이 보고 싶어 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진 I ㈜모팩스튜디오

사진 I ㈜모팩스튜디오

이것이 그를 ‘킹스 오브 킹스’로 이끌었다.

작품은 종교적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장치를 통해 믿음, 사랑, 성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감정의 결을 따라 섬세하게 전달한다. ‘케데헌’과 달리 뼈속까지 토종 K콘텐츠다.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감독이 연출하고, 공동 제작했다.

그러나 이병헌은 비기독교인이자 불교 신자로 유명하다. 장성호 감독은 왜 그를 떠올렸고, 어떻게 캐스팅했을까.

조력자는 ‘범죄도시’ 장원석 대표였다. 장 감독은 “기독교 콘텐츠인데다 애니메이션, 마이너한 작품처럼 보이니 ‘좀 센 배우를 붙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더라. 일반 대중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의도에서”라고 말했다.

과연 ‘이병헌 배우가 할까?’라는 의문이었는데 빠르게 또 흔쾌히 수락했다. 좋은 작품이면 반응할 거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던 것. 장 감독은 “이병헌의 아내인 배우 이민정 씨의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천인만큼 그 영향도 있었고,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컸다더라”고 전했다.

이병헌은 극중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연기한다. 아서 왕을 동경하는 아들 ‘월터’에게 ‘진짜 왕’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이자 진짜 이야기꾼이다. 이번에도 ‘디킨스’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꾼으로서의 진정성과 아버지로서의 진심을 함께 담아낸 그였다.

결국 두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맥락은 ‘한국적인 것’을 세계 무대에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한계를 두지 않는 K-콘텐츠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무엇보다도 한 인간 이병헌의 ‘부성’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 세 감정선이 은은하게 교차한다. 귀마와 디킨스. 극과 극의 캐릭터지만 결국 이병헌이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 안에서 파도처럼 스며든다.

그 물결에 몸을 맡긴 관객은 눈이 아닌 귀로, 그리고 다시 오감으로 그 진심을 깊게 느낀다. 메가 히트작 속 그가 언제나 ‘비밀병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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