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유통업계 필수로 떠오르는 믹솔로지 제품
새로운 조합 즐기는 소비자 늘어… 편의점 혼합형 주류 매출 상승
2023년 55억→올해 650억 추정… SNS 입소문 레시피 제품화 시도도
유행보단 취향 중시 ‘옴니보어’ 소비… 라면 맵기조차 세밀하게 요구해
단일 제품으로 만족시키기 어려워
이곳에서는 전담 직원인 카누 테일러가 일대일로 나의 커피 취향을 찾아준다. 직원 안내에 따라 소비자는 ‘테일러링 노트’를 작성하며 산미와 보디감을 비교 시음한 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캡슐을 찾는다. 1만5000원을 내면 자신이 고른 커피와 디저트가 함께 나오는 ‘카누 한 상’을 즐기고, 31가지 캡슐 중 7가지를 골라 나만의 맞춤형 키트를 만들 수 있다. 오픈 직후 하루 400명이 찾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한 방문객은 “일할 때와 쉴 때 마시는 커피가 다르다”며 “직접 맛을 고르고 조합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동서식품이 출시한 카누 캡슐 커피는 총 31가지다. 카누 캡슐 출시 당시에는 8가지였지만 계속 맛을 늘리고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은 더 세분화하고 다양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계속 새로운 맛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 섞는 재미에 빠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믹솔로지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젊은 고객들이 많은 편의점이다. 11일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 구매 빅데이터의 구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편의점 주류 시장에서 하이볼 등 믹솔로지 제품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 기준 지난 1년간 편의점에서 판매된 믹솔로지 주류 구매 추정액은 6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4.2% 증가했다. 2023년 55억 원에서 2년 연속 큰 폭으로 성장하며 편의점 주류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 SNS 인기 레시피도 상품화
오뚜기는 이달 ‘진라면 약간매운맛’을 출시했다. 오뚜기가 6월 한정판으로 선보인 약간매운맛은 기존 ‘순한맛’과 ‘매운맛’ 중 고민하던 소비자들이 두 가지 맛을 섞어 먹는 유행에서 착안했다. 소비자들의 호응이 이어지자 정식 출시까지 된 것이다. 오뚜기 측은 “쿠팡에서 출시 직후 6월 진라면 판매량이 전월 대비 20%까지 증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계속 팔아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면서 “세분화된 소비자 취향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맵기와 라인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농심은 저칼로리 면 브랜드 ‘누들핏’을 앞세워 중화풍 비빔면 신제품 ‘누들핏 마라탄탄’을 선보였다. 기존 다이어트식의 밋밋한 이미지를 깨고 취향형 소비자도 만족시킬 수 있는 조합을 시도한 셈이다. 삼양식품은 여름철 한정판으로 ‘맵탱 쿨 스파이시 비빔면 김치맛’을 내놨다. 매운 비빔면 소스에 시원한 김치의 아삭함을 결합해 색다른 조화를 선보였다.
코카콜라사는 최근 대표 탄산음료 브랜드 환타의 신제품 2종을 연이어 출시했다. ‘환타 멜론’은 간식 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멜론맛 트렌드를 반영했다. 또 다른 제품인 ‘환타 제로 상큼 피치’는 복숭아향에 제로 슈거, 제로 칼로리를 결합해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층의 니즈를 반영했다.
버거킹은 SNS 유행 흐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버거킹이 8월 출시한 ‘닥터페퍼 제로 피클팝’은 해외에서 유행이 시작된 탄산음료 닥터페퍼와 피클 조합을 응용한 메뉴다. 이는 출시되자마자 예상보다 큰 인기를 얻었다. 버거킹은 “단순한 이색 조합을 넘어 고객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반영하고, 색다른 브랜드 경험을 전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써브웨이는 온라인에서 유행한 레시피인 타코 샐러드를 정식 메뉴로 선보였고, 이 제품 역시 큰 인기를 끌면서 재료가 소진돼 조기에 판매가 종료됐다. GS25가 판매하는 ‘얼박사’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양강장제와 사이다를 섞어 먹는 ‘편의점 꿀조합 음료’ 유행을 반영해 탄생했다. GS리테일과 동아제약이 공동 개발한 얼박사는 6월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 250만 개를 돌파하며 음료 매출 전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취향 세분화가 이끄는 열풍
유통업계 전반에 확산되는 믹솔로지 열풍은 다양해진 소비자 취향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다. 그 배경에는 옴니보어 소비 확산이 큰 영향을 미친다. 옴니보어는 원래 ‘잡식성’이라는 의미로 나이와 세대에 상관없이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취향’을 우선시하는 소비 행태를 가리킨다. 이들은 명품과 가성비 제품을 동시에 소비하고, 전통적인 카테고리 구분을 넘나들며 상황과 기분에 맞춰 선택한다. 가령 편의점에서 하이볼을 즐기면서도 프리미엄 캡슐 커피를 찾고, 라면 한 그릇에도 ‘맵기 단계’를 세밀하게 요구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제품 자체보다 경험과 다양성,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기만의 스토리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조합과 변주를 즐기는 믹솔로지 상품이 이들의 취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동시에 ‘잘파세대(Z+알파세대)’가 소비시장 핵심축으로 부상한 것도 믹솔로지 확산에 힘을 싣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짧고 강렬한 경험에 익숙한 이들은 소비 자체를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로 활용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비자의 취향이 세분화될수록 단일 제품만으로는 만족시키기 어렵다”면서 “소비자가 자기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믹솔로지 상품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