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전쟁에 기진맥진, 中 알·테 공습까지…'매력없는 유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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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할인행사를 진행한 롯데마트 서울역점

지난해 할인행사를 진행한 롯데마트 서울역점

미국 월마트 주가는 작년 한 해 70%가량 뛰었다. 아마존과 코스트코는 40% 이상 올랐다. 치열한 유통 전쟁에서 살아남아 파티를 벌였다. 한국은 달랐다. 이마트, 롯데쇼핑 등 국내 증시에 상장한 한국 유통사는 1년 새 주가가 20~40% 급락했다. 한때 대표 경기 방어주로 꼽히며 불경기 속에서도 각광받았지만 최근 출혈 경쟁 속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17일 글로벌 시가총액 톱10 리테일 기업의 전날 종가를 분석한 결과, 10곳 중 8곳이 지난해 1월 2일 대비 상승했다. 미국 기업 중에서는 월마트가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16일(현지시간) 기준 종가는 91.3달러로 71.94% 뛰었다. 같은 기간 아마존(47.18%), 코스트코(41.36%) 등도 상승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의 유통 대장주도 일제히 뛰었다. 같은 기간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알리바바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10.26% 상승했다.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를 운영하는 SEA는 190.33% 치솟았다.

국내에서는 시총 톱10 유통사 가운데 한 곳(현대홈쇼핑)을 제외하고 일제히 하락했다. 17일 종가 기준 롯데쇼핑(-27.9%), BGF리테일(-22.95%) 등 국내 간판 유통사의 주가가 지난해 1월 2일 대비 떨어졌다. 해외 투자자도 대거 빠져나갔다. 이마트의 외국인 지분율은 작년 3월 24.6%에서 18.6%로 하락했다.

한국 증시 약세 영향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국내 유통업체가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해외 유통사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격하고, 리테일 테크 등 신사업에 투자하며 경쟁력을 키워가는 동안 한국 유통업체들은 국내 시장에만 안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뜩이나 작은 국내 시장은 알리바바 등 해외 업체의 진출까지 본격화하며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유통사들이 해외 영토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통주 운명 가른 3가지 ① 내수에 갇힌 사업구조
② C커머스로 '집토끼' 탈출 ③ 턱없이 적은 해외 매출비중

출혈전쟁에 기진맥진, 中 알·테 공습까지…'매력없는 유통기업'

“월마트 주가가 1999년 이후 최고를 기록한 한 해다.” 지난해 11월 로이터는 이같이 분석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판매하는 월마트가 미국 캐나다 남미 인도 등에서 각광받자 작년 한 해 월마트 주가는 랠리를 펼쳤다. 16일(현지시간) 월마트 종가는 91.3달러로 지난해 1월 2일 대비 71.94% 급등했다. 월마트뿐 아니라 아마존, 알리바바, 메르카도리브레 등 글로벌 온·오프라인 유통업체 주가도 대부분 고공행진했다. 국내는 딴판이다. 이마트, 롯데쇼핑, 신세계 등 국내 유통주 주가는 지난해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유가 뭘까.

○ 내수는 출혈 격화, 해외는 걸음마

유통주는 보통 ‘경기방어주’로 꼽힌다. 불황에도 생활필수품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은 바닥을 쳤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이마트의 영업이익률은 0.6%, 롯데쇼핑은 3%에 그쳤다. 자체 마진을 줄여 할인폭을 늘리는 등 가격 출혈 경쟁을 펼친 영향이다. 같은 기간 아마존(10.5%)과 월마트(4.3%), 코스트코(3.7%)의 영업이익률보다 훨씬 낮다.

소비 부진 속에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까지 국내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초저가를 앞세워 한국을 공략했다. 국내 유통사들은 고객 이탈을 막는 ‘충성 멤버십 고객’도 부족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스트코, 아마존 등은 자신만의 구독 생태계를 통해 충성 고객층을 탄탄히 유지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이런 고객층을 갖춘 기업은 쿠팡뿐”이라고 지적했다.

한정된 내수 시장 속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려면 해외 영토 개척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해외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유통 대장주 ‘투톱’인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해외사업 매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7%, 10%에 그친다. 코스트코(31%), 월마트(18%)보다 훨씬 적다. GS리테일과 BGF리테일도 동남아시아 등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아직 해외 매출 비중이 각각 2%, 3%에 불과하다.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K웨이브 타고 해외 적극 공략해야”

e커머스에서도 ‘초국경’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해외 무대에서 토종 e커머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핀둬둬, 싱가포르 쇼피 등은 본토를 넘어 이미 해외시장에서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에 비해 G마켓, SSG닷컴, 롯데온 등은 국내 이용자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마저도 쿠팡 등에 밀려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다. 최근 G마켓은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국내 셀러들은 ‘G마켓’이 아니라 ‘알리익스프레스’ 플랫폼을 통해서 해외에 진출한다. 대만 사업을 시작한 쿠팡도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해외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리테일 테크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지만 국내에선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아마존은 일찍부터 사업 다각화에 나서 커머스뿐만 아니라 아마존웹서비스(AWS),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 사업 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월마트도 AI를 공급망 관리, 고객 반응 감지 매장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이제서야 광고 등 극히 일부분에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성장성도 불투명하다. 경제 성장률 둔화와 고령화로 내수 시장이 계속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현재 2%대 초반에서 2050년 0.5%로 뚝 떨어질 전망이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국내 경제와 인구 전망을 고려했을 때 향후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해외시장 개척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으로 K웨이브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유통사들이 국내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 기업엔 없는 K콘텐츠와 상품 경쟁력을 지렛대 삼아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라현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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