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작품 기증한 故후지즈카…20년째 기린 최종수 관장의 ‘장무상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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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가운데)과 김기세 전 과천시 부시장(왼쪽), 고미술전문가 김영복 씨.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지난 4일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가운데)과 김기세 전 과천시 부시장(왼쪽), 고미술전문가 김영복 씨.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추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세한도(歲寒圖)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낙관이 찍혀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 그 마음이 시공을 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6년 2월 추사가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 ‘기우선(寄藕船·우선은 이상적의 호)’ 등 20여 점을 포함해 2750여 점의 추사 관련 자료와 기타 청나라, 조선 자료 1만5000여 점을 기증한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와 최종수 성균관장과의 인연이다. 당시 후지즈카 씨를 설득해 유물을 기증받은 최 관장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까지 매년 기일(7월 4일)에 그의 묘소를 찾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서 만난 최 관장은 “고인이 보여준 귀한 마음에 달리 보답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20년 세월의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후지즈카 선생은 기증 몇 달 후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연구에 써달라며 200만 엔(당시 약 2000만원)을 한국에 기부하셨지요. 그런 분의 숭고한 마음을 돌아가셨다고 잊을 수는 없어서….”

추사는 말년을 경기 과천에서 보냈다. 2005년 과천문화원장으로 각종 추사 관련 사업과 연구를 추진하던 최 관장은 1944년 세한도를 기증한 추사 마니아 후지즈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교수 집안에 유물과 자료가 더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후손들을 찾았다. 그의 아들이 후지즈카 아키나오 씨다.

생전의 후지즈카 아키나오 씨(왼쪽)와 최종수 성균관장.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생전의 후지즈카 아키나오 씨(왼쪽)와 최종수 성균관장.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아버지 후지즈카 교수가 모은 추사의 많은 작품은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다 불타지 않았습니까?
“그곳은 연구소였거든요. 그래서 집에 뭐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아들 후지즈카 선생의 집은 도쿄 변두리더라고요. 오래된 일본식 가정집인데, 그곳에 상당한 추사 관련 유물 및 자료가 남아 있었던 거죠.”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몇 번을 찾아가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셨어요.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지요. 그렇게 몇 번을 허탕 친 어느 날 아침인데, 전화가 와 ‘언제 출국하냐’라고 묻더군요. ‘오늘 밤’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잠시 들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더군요.”

―일종의 시험을 한건가요.
“후지즈카 씨는 학자가 아니었기에 추사 관련 작품과 자료를 물려받았을 뿐 연구는 못 했습니다. 그게 늘 평생의 숙제였지요. 물려줄 자식도 없었고요. ‘정말로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라고 몇 번을 되묻더군요. 조건은 그거 하나였습니다. 2013년 과천 추사박물관이 탄생한 계기지요.”

지난해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오른쪽)과 후지즈카 씨의 조카딸 고마다 가즈코 씨.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지난해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오른쪽)과 후지즈카 씨의 조카딸 고마다 가즈코 씨. 최 관장은 “후지즈카 선생님은 생전에 ‘추사 작품 등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버지도 아주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라며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라고 말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외람됩니다만 기증품의 가치가….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 청장이 기증품을 검토하고 두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정부에 후지즈카 씨 훈장 수여를 건의해야겠다는 것과 자신이 쓴 ‘완당평전’을 절판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이 기증받은 자료를 공부하고 다시 써야겠다고…. 석 달 후 국민훈장 목련장이 수여됐고, ‘추사 김정희(2018년)’도 나왔습니다.”―박물관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습니다.
“90세가 넘다 보니 기증 때도 한국에는 못 오셨습니다. 병원에 계실 때라 훈장도 조카딸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가 받았지요. 우리 측에서 직접 찾아가 드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 기일을 앞두고 과천시에 ‘돌아가셨지만, 뭐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닙니까’라고 하더군요. 사람과의 관계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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