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캠벨(미국)이 23일(현지 시간) 멕시코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비단타 비야르타 골프코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멕시코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후 여자 친구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캠벨은 최종 합계 20언더파 264타로 올드리치 포트기터(남아공)와 동타를 이뤄 두차례 연장전 끝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푸에르토 바야르타 (멕시코)ㅣAP 뉴시스
압박감은 집채만 했다. 전날 끝난 PGA투어 멕시코 오픈의 경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집채만 한 압박감’이었다.
선두에 6타 차이로 뒤진 채로 4라운드를 출발한 애런 라이(잉글랜드)가 초반 6홀에 5타를 줄이는 동안 챔피언 조에 있던 3명의 선수 중 어떤 선수도 단 1타를 줄이지 못했다. 기세로 보았을 때 라이의 승리가 점쳐졌다. 또한 세계랭킹 29위로 출전 선수 중 랭킹 순위가 가장 높기도 했다.
애런 라이는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한 선수다. 첫째, 그는 프로선수들이 쓰지 않는 아이언 커버를 쓴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가장 좋은 아이언 세트를 사줬고, 라이는 아버지가 사준 골프채가 상하지 않도록 아이언 커버를 사서 끼웠다. 지금까지도 아이언 커버를 쓰는 이유는 자신을 향한 가족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 그는 다른 프로선수들과 다르게 양손에 검은 장갑을 착용한다. 어릴 적에는 손을 다치지 않고, 그립이 덜 닳도록 양손 장갑을 꼈다. 여덟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오른손 장갑을 챙기지 않아서 왼손에만 장갑을 끼고 대회에 출전했는데, 최악의 성적을 냈다. 그 후로 그는 양손에 장갑을 끼는 것을 고집했고, 그럴 때 더 좋은 그립감과 일관성을 느꼈다.
6홀 만에 리더보드 상단에 올라선 라이는 후반으로 갈수록 날카로움이 사라졌고, 후반 막판에 연속 보기를 범하며 공동 4위로 경기를 마감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한 올드리치 포트기터(남아프리카공화국)는 20세로 PGA 투어 최연소 선수이며, 최장타 선수다. 특히 19세였던 지난해 2월 콘페리투어 아스타라 골프 챔피언십에서 PGA 2부투어 최초로 ‘꿈의 타수’ 59타를 작성해 화제를 모았다.
그도 마지막 라운드 내내 챔피언조의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는 그린 주변에서 다섯 번에나 어프로치 실수를 했다.
1타차 2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출발한 브라이언 캠벨(미국)은 한 걸음 퍼팅을 두 번이나 놓쳤다. 컷오프를 통과한 77명의 선수 중에 드라이버 비거리가 75위였던 그의 퍼팅 실수는 치명적으로 보였다.
브라이언 캠벨(오른쪽)과 올드리치 포트기터가 23일(현지시간) 멕시코 바야르타의 비단타 바야르타에서 열린 PGA 멕시코오픈 최종라운드 후 서로 격려하며 포옹하고 있다. AP 뉴시스
상위권에서 미친 듯이 따라오는 선수가 없는 가운데 올드리치 포트기터와 브라이언 캠벨이 20언더파 동타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18번 홀은 540야드 파5였기 때문에 장타자인 포트기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두 선수의 드라이버 거리는 4라운드에서 평균 40야드 이상 차이가 났다.
첫 번째 연장전에서 캠벨은 우드로 친 세컨 샷을 벙커에 보냈다. 아이언을 잡은 포트기터는 2온에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세컨 샷에서 좌측으로 큰 훅을 냈다. 그 샷은 4라운드 동안 친 그의 아이언 샷 중 최악이었다. 캠벨은 벙커에서 세 번째 샷을 쳤다. 볼의 위치가 좋았기에 프로선수라면 충분히 핀에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벙커샷은 아주 짧았다. 두 선수 모두 버디에 실패하며 두 번째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두 번째 연장전에서 포트기터는 좋은 티샷을 쳤다. 캠벨은 오른쪽으로 큰 슬라이스를 냈다. 오른쪽은 OB 지역이었기 때문에 게임이 이대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른쪽 울타리를 넘어 나무숲으로 날아간 공은 나무를 맞고 튕기어 나와 골프 코스로 들어왔다다. 상황은 여전히 포트기터에게 유리했다. 드라이버 거리가 짧은 캠벨의 공이 슬라이스가 났기 때문에 두 선수의 핀까지 남은 거라는 90야드가 넘게 차이가 났다.
캠벨이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은 그린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트기터는 아이언으로 쉽게 2온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포트기터의 얼핏 보기에 잘 친 샷은 짧아서 벙커에 떨어졌다. 60야드를 남겨 놓고 친 캠벨의 세 번째 샷이 핀으로부터 한 걸음 거리에 붙었고, 포트기터의 벙커샷은 1.5걸음에 붙었다. 포트기터가 버디에 실패하면서 우승컵은 캠벨에게 돌아갔다.
브라이언 캠벨이 23일(현지시간) 멕시코 바야르타의 비단타 바야르타에서 열린 PGA 멕시코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1993년생 캠벨은 이번 대회가 PGA 1, 2부 투어를 합쳐 187번째 대회 출전이었다.그는 이 대회 전까지 PGA 정규 투어에 27번 출전했고, 2부 투어에는 159차례 나와 준우승만 5번 했다. 2015년 프로 전향 후 10년간 주로 2부 투어에서 뛰며 고전했던 캠벨은 이날 고대하던 첫 승을 거두며 우승상금 126만달러(약 18억1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AP 뉴시스
캠벨은 아마추어 무대를 제패한 선수였지만, 프로 무대는 그에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프로 데뷔 두 번째 해에 2부 리그로 떨어졌고, 1부와 2부리그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187개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PGA투어는 물론이고 2부 리그인 콘페리 투어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 누구도 우승할 만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캠벨의 우승은 최선의 결과였다.
골프의 신은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브라이언 캠벨에게 선물을 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빅네임 골퍼가 참여하지 않은 대회였지만, 스토리가 없는 대회를 골프의 신은 용납할 뜻이 없었다. 골프는 이래저래 골프 팬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