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기기 처음 잡아봤는데도… 두 번째 만에 ‘영상 확보’ 성공

11 hours ago 4

필립스 펄스 커넥트 행사 체험
‘AI로 환자 돌볼 시간 확보’ 중점
AI 기반 MRI 촬영 기술 등 선보여
CT에선 AI가 고품질 영상 만들어… 산과 초음파는 의사와 역할 분담

행사에 참석한 외국 기자가 혈관 모형을 이용해 AI 기반 심장 중재 시술 지원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필립스는 의료 영상을 활용해 의료진의 시술 계획과 기기 위치 확인을 지원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에인트호번=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행사에 참석한 외국 기자가 혈관 모형을 이용해 AI 기반 심장 중재 시술 지원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필립스는 의료 영상을 활용해 의료진의 시술 계획과 기기 위치 확인을 지원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에인트호번=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탐촉자를 조금 더 세워서 아래로 천천히 움직여보세요.”

화면 속 안내를 따라 초음파 탐촉자(초음파검사를 할 때 피부에 대는 손잡이 형태의 기기)를 움직였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태아의 기준 영상이 잡히지 않았다. 시연을 진행하던 필립스 관계자가 탐촉자의 각도를 조금 더 조정해 보라고 안내했다. 인공지능(AI)의 안내에 맞춰 다시 움직이자 두 번째 시도에서는 AI가 필요한 표준 영상을 올바르게 획득했다는 안내 메시지를 표시했다.

지난 1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필립스 혁신센터에서 열린 ‘필립스 펄스 커넥트’ 행사에서 체험한 AI 기반 산과(産科) 초음파 시연이다. 초음파 기기를 처음 잡아본 기자도 AI의 안내에 따라 필요한 표준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필립스는 이 기술을 조산사 등 일정한 교육을 받은 의료인이 쉽게 영상을 확보하도록 돕는 AI 기반 초음파 솔루션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자기공명영상(MRI), 스펙트럴 CT, 산과 초음파, 생체신호 기반 건강 위험 예측(RATE), AI 기반 심장 중재 시술 지원 기술(Device Guide), 웨어러블 심전도 분석 솔루션(ePatch·Cardiologs) 등 다양한 기술이 소개됐다.

필립스가 AI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것은 ‘의료진의 시간’이었다. 외즐렘 피단즈 필립스 국제사업부 총괄은 “AI는 의료진이 환자를 돌볼 시간을 되돌려주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의료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를 AI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패트릭 만스 필립스 데이터사이언스·AI 엔지니어링 총괄은 AI를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정의했다. 그는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맡고 의료진은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 구조가 앞으로 의료 혁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과제는 의료 기술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었다. 의료 기술은 발전했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행정 업무와 데이터 확인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필립스 미래 건강지수 2026에 따르면 AI를 사용하는 의료진의 46%는 연간 132시간 이상, 약 16일의 업무 시간을 절약했다고 답했다. 절반은 그만큼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됐다고 응답했고, 39%는 최근 3개월 동안 AI가 의료 오류를 발견하거나 예방하는 데 세 차례 이상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반면 70%는 AI 교육이 부족하거나 체계적이지 않다고 응답해 기술 확산만큼 교육과 시스템 구축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센터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기술은 ‘AI 기반 자율 MRI 촬영 기술’이었다. 기존 심장 MRI는 검사자가 여러 촬영 단면을 직접 설정해야 했지만 이 기술은 AI가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인식해 촬영 계획을 자동으로 제안한다. 검사자는 이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만 수정하면 된다. 이어 소개된 ‘AI 기반 MRI 영상 재구성 기술’은 검사 시간을 줄이면서도 영상 선명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CT에서도 AI는 영상을 판독하기보다 고품질 영상을 만드는 역할에 집중했다. 저선량 촬영에서도 영상 품질을 유지하도록 돕는 ‘AI 기반 CT 영상 재구성 기술’이 소개됐다. 초음파 역시 AI가 탐촉자의 위치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안내해 검사 과정을 표준화하는 방식이었다. 의료진의 숙련도에 크게 의존했던 과정을 AI가 보조하면서 일관된 검사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AI가 의사와 역할을 나누고 있다는 점이었다. 산과 초음파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AI는 탐촉자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안내하고 필요한 영상을 확보하도록 도왔다. 영상을 얻는 과정은 조산사나 간호사 등 교육받은 의료인이 수행하고 전문의는 확보된 영상을 판독해 최종 진단을 내리는 구조를 제시했다. AI가 의사의 진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 과정을 표준화해 의료 인력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둘째 날 방문한 네덜란드 세인트 안토니우스 병원에서도 같은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원 심장센터에서는 ‘AI 기반 심장 중재 시술 지원 기술’을 활용한 시술이 공개됐다. 의료 영상을 분석해 의료기기의 위치와 크기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시술 계획 수립을 지원했다. 의사는 이를 바탕으로 최종 판단과 시술을 수행했다. 혁신센터에서 본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필립스 관계자가 AI가 적용된 산과 초음파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은 사용자가 올바른 탐촉자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안내한다. 에인트호번=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필립스 관계자가 AI가 적용된 산과 초음파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은 사용자가 올바른 탐촉자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안내한다. 에인트호번=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필립스는 AI를 자동화(Automation), 의료진 역량 강화(Augmentation), 민첩성(Agility)이라는 세 축으로 설명했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AI 전략의 핵심이라는 것. 회사는 연구개발 인력의 절반을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사이언스 분야에 배치하며 하드웨어 중심 기업에서 AI와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AI의 성능보다 의료의 변화였다. 초음파검사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AI의 안내를 받아 표준 영상을 확보하고, MRI는 AI가 촬영 계획을 세우며, 심장 시술에서는 AI가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했다. 의사가 담당하던 일부 반복 업무를 AI와 다른 의료 인력이 함께 수행하는 방향으로 의료 현장이 변화하고 있었다.

고령화와 의료 인력 부족은 한국 의료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에인트호번에서 본 의료 AI의 방향은 분명했다. 한정된 의료 인력이 더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에인트호번·니우에헤인=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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