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이면서 마라토너인 저자… 15개월간 에티오피아서 참여 관찰
함께 뛰면 고통-어려움 극복 가능
기록 집착 않고 신체 변화에 집중… 재능보다 노력 믿는 ‘집단적 신념’
◇달리기 인류/마이클 크롤리 지음·정아영 옮김/384쪽·2만1000원·서해문집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눈부신 기록 뒤엔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을 믿는 ‘집단적 신념’이 큰 역할을 했다. 공동체적 연대가 바탕이 된 고유의 탄탄한 훈련 시스템이 그들을 ‘달리기 강국’으로 만든 셈이다.
이 책은 영국 더럼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에티오피아로 직접 참여 관찰 연구를 떠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2시간 20분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저자는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뒤, 다음 날 무작정 밖으로 나가 러너들과 합류한다. 그렇게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15개월 동안 직접 달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언덕을 달렸고, 하이에나를 쫓아간 적도 있다. 독창적이지만,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방식으로 달리는 에티오피아 러너들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은 GPS 시계나 데이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달리기가 수치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자 생존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GPS 시계를 차더라도 그룹 중 한 명만 쓰거나, 서로 누가 더 느리게 달리는 지 실험하는 데 쓰기도 한다. 이는 무조건 빠른 기록을 세우는 것보다, 러닝이 몸에 주는 느낌과 서로의 호흡을 더 중시한다는 걸 보여준다.재밌는 건 에티오피아에선 혼자 뛰는 걸 금기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혼자 뛰는 러너는 ‘기록보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여행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에게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함께 다양한 지형을 뛰면서, 빠른 페이스가 필요하거나 장애물이 있을 때 서로에게 신호를 주며 한 몸처럼 달린다.
책에는 걷기만 해도 숨이 차 뛰기 힘들 정도로 높은 지대에서 뛰는 러너들도 다뤘다. 이는 특별한 훈련법이라기보단, 고지대의 희박한 산소나 유칼립투스 나무가 가득한 숲 등 특정 장소에서 뛰면 ‘신비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늘 똑같은 조건의 트랙에서 뛰는 것보다 흙이 쌓인 숲이나 돌길 등 여러 곳에서 몸을 적응시키는 게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땐, 희한한 ‘전통’도 존재했다. 훈련 중에 쓰러진 한 러너는 자신이 넘어진 이유가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그를 둘러싸고 퇴마 의식까지 치러준다. 하지만 이건 단순하게 미신으로 폄하할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히려 이 러너가 자기에게 닥친 고통과 어려움, 압박 같은 불확실성을 ‘저주’로 받아들였단 점에 주목한다.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닝을 위한 훈련법이나 심리적 성공담을 알려주진 않는다. 대신 저자의 전문성과 생생한 현장을 바탕으로 달리기의 참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달리기에는 인생과 문화, 공동체의 경험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요즘 한국도 ‘러닝 인구 1000만 명 시대’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달리기가 인기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을 통해 새로운 러닝의 매력을 얻을 수 있다. 또 자연환경의 마법적인 힘, 공동체와 연대, 실패와 희망의 인간적인 스토리에 깔린 인류 문화의 한 단면도 관찰할 수 있다. 인류학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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