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람에겐 ‘길’, 동물에겐 ‘킬’

1 week ago 13

도로 생긴 후 동식물 생태계 단절… 美, 하루 100만 마리 이상 ‘로드킬’ 교통 흐름 파악하고 사체 먹는 등… 동물들 새로운 생태계 형성하기도 ◇크로싱/벤 골드파브 지음·조은영 옮김/568쪽·2만8000원·곰출판 챗GPT 도로 생태학을 취재하던 저자는 열화상 카메라에 포착된 심야의 도로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영상 속 2차선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어미 사슴과 새끼들이 서 있다. 사슴들은 몇 걸음 내딛더니 차가 다가오자 멈춘다. 15초가 지나 어미가 다시 발을 떼자 이번엔 픽업트럭이 급정거한다. 새끼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갔는데, 어미는 40초 뒤 혼자 먼저 도로를 건넌다. 새끼들이 뒤따르려던 찰나 다시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이 달려온다. 다행히 사슴들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위험천만한 순간들은 매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지구엔 약 4000만 마일(약 6437만 km)의 도로가 깔려 있고,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인프라 쓰나미”라고 지적한다. 도로와 교통이 식물과 동물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연구하는 ‘도로 생태학’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세계에 넘쳐나는 도로는 이동 수단을 넘어 생태계를 분단하고 진화 과정까지 교란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동물이 하루 100만 마리 이상 차에 치여 죽고, 도로는 물고기 이동마저 방해하며 소음과 염분, 타이어 미세입자로 동물 서식지를 오염시킨다. 반면 도로변의 우유초(밀크위드)가 나비의 핵심 서식지가 되는 등 새로운 생태계도 생겨난다. 책은 도로가 어떻게 ‘생명의 그물’을 새롭게 짜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미 서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I-80’에선 로드킬이 오히려 줄어드는데, 이곳 교통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움직이는 울타리(moving fence)’가 돼 동물의 이동 자체를 봉쇄해 버렸다. 다른 지역에선 야생 동물 생태 통로로 로드킬을 현저히 줄였는데, 이는 동물 보호뿐 아니라 사고를 예방해 건설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을 만큼 이득이 됐다. 도로 생태학은 동물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도로 위에서 죽은 동물은 사람에겐 불길한 징조지만 까마귀나 코요테, 독수리, 스컹크와 불개미에겐 먹이가 된다. 일부 영리한 동물은 교통의 흐름을 파악해 도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먹잇감을 구해 ‘네크로바이옴(necrobiome·사체로 비롯하는 생태계)’을 형성한다. 만성 미네랄 결핍을 해결하려는 무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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