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성해나 작가 신작
진짜-가짜 경계 예리하게 포착
현대인 심리 그려낸 블랙코미디
◇혼모노/성해나 지음/368쪽·1만8000원·창비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놓인 것들로 가득한 오늘날의 세태를 예리하게 포착한 단편들이 수록된 책이다. 저자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을 펴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표제작을 비롯해 대규모 집회 한복판에서 혼란을 겪는 재미교포를 그린 ‘스무드’ 등 블랙코미디 같은 소설 7편이 담겼다.
수록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누가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당황하며 마블… 정도를 꼽고, 멜론 순위권에 있는 노래만 듣던” 평범한 주인공이 문제적인 영화감독의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취향이랄 게 별로 없다가 논란이 많은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된 주인공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맹목적 팬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심리적 혼란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잉태기’는 임신한 딸을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출가한 성년의 딸에 대한 엄마와 할아버지의 과도한 애정 혹은 집착은 원정출산을 하느냐 마느냐부터 사사건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을 향해 가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소외된다.개성 넘치면서도 핍진성 높은 서사와 등장인물은 독자로 하여금 현실의 여러 문제를 반추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 허구와 진짜 세상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간명한 문체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던 이야기가 은유하듯 따끔한 문장으로 매듭지어질 때 독자의 마음에 “펑, 무언가 터지던 순간”을 남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