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 2.0’을 쓸 때가 온 것 같아요. 시간 괜찮으세요?” 중국 딥시크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지난 2월,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당시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은 국내 1세대 AI 연구자인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픈AI의 챗GPT 쇼크 직후인 2023년 2월 집필을 시작한 하 수석의 전작 이후 약 2년 만이었다.
하 수석은 2년 전 한 대표와의 대담을 담은 저서를 통해 글로벌 AI 경쟁 구도를 예측했다. 그 후 AI 전장은 예상보다 더 치열하게 흘렀다. 미국 빅테크들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대부분은 각종 평가에서 인간 평균 능력을 앞서기 시작했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의 등장과 화웨이의 AI 반도체 경쟁력 확보로 미국과 중국 간 AI 기술 격차는 2~3년 수준(스탠퍼드 AI 보고서 기준)으로 좁혀졌다. AI 안전성에 중점을 둔 유럽연합(EU)도 300조원 투자를 발표하고 ‘AI 대륙 시행 계획’을 공표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 수석은 2년 만에 나온 신작에서 지금 한국이 놓인 현실이 전작에서 경고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AI가 가져올 거대한 변화 속도에 비해 한국은 사회적, 제도적 준비가 더디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지능을 갖추며 생겨날 악용 가능성, 자동화에 따른 해고,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분배 논란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이 AI 전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다시 움직여야 한다. 저자는 새 정부가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제대로 된 전략을 짜고 정책을 실행한다면 다시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일본 스타트업 사카나AI가 개발한 AI 에이전트인 ‘AI 사이언스’가 수행한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AI학회 워크숍에 채택돼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일본의 AI 유니콘인 사카나AI는 사실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 AI 연구자인 라이언 존스와 데이비드 하가 창업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일본 스타트업에 모여든 덕이다. 실리콘밸리는 인도, 중국, 러시아계 유대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이 넘쳐난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는 그리스계 아버지와 싱가포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전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미라 무라티는 알바니아 출신이다. 저자는 알바니아 출신의 뛰어난 여성 연구자가 만약 한국에 왔다면 과연 무라티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 묻는다.
AI 논문 수만 보면 한국 KAIST의 실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산업에 임팩트를 주거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논문 비율은 낮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중국 기업에서 나오는 논문들이 학교와 공동 연구한 결과물이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책은 임팩트 있는 논문 하나를 쓰는 시간에 빨리 작성할 수 있는 논문 여러 편을 찍어내듯이 써내는 AI학계의 문제를 짚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AI 모델 개발 프로젝트는 단순히 하나의 국가 LLM을 만드는 것을 넘어 궁극적 목표가 5년 후의 일반인공지능(AGI) 기술 확보가 돼야 한다고도 봤다. 그래야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AGI를 목표로 달리는 글로벌 AI 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글로벌 AI 경쟁 양상과 한국의 전략을 담은 이 책은 단순한 기술 전망서가 아니라 새 정부의 ‘AI 국정 전략서’로 읽힌다. 하 수석은 한국이 국가 차원의 소버린 AI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반드시 미국이나 중국을 뛰어넘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책은 미국과 중국 같은 국가들이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만 확보해도 충분하다고 제언한다. 책은 AI가 산업계에 미칠 여파를 짚는 것을 넘어 어떻게 AI가 인류 사회에 공언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 논의에 참여하는 게 글로벌 수준의 AI 기술력을 갖춘 국가가 할 일이라고 제언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