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첫 산문집 <호의에 대하여>를 펴냈다. 오랜 법정 경험을 넘어 삶의 근간을 이루는 호의와 평범한 선함을 이야기하는 책. 2006년부터 그가 운영해온 블로그 글 1500여 편 중 120편을 골라 엮었다. 평생 법정의 언어로 글을 써 온 그가 일상의 언어로 펴낸 첫 책이란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신간이기도 하다.
책의 중심에 놓인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배려, 따뜻한 마음이란 것. 법정에서 수형자, 소년범, 가정법원에 선 부부 등 수많은 사람을 마주했던 그는 법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끝내 놓을 수 없던 인간적인 연민을 책 속에 솔직하게 기록했다.
책의 내용은 세 갈래로 나뉜다. 법관으로서의 일상 성찰, 독서와 배움의 기록, 그리고 가족과 이웃 등 평범한 삶의 장면 등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성공한 판사가 아니라 평균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재판관 시절에도 그는 거대한 담론보다 삶에서 벌어지는 갈등, 슬픔에 귀를 기울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인간을 향한 연민과 작은 호의들이 적극적으로 드러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결국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에 닿는다.
문형배의 에세이는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방식을 기록한 문학적 태도가 가득하다. 일평생 써 내려간 판결문이 명확성과 단호함을 추구했다면 책 속 문장은 서정적이며 한없이 자유롭다. 법의 엄정함 뒤에 자리했던 인간이 법복을 벗고 전하는 사유라서 더욱 색다른 울림을 준다. 이 책은 지난 25일 출간 이후 3일 만에 베스트셀러 종합 3위(28일, 예스24 기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