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박규현 "먼저 세상 떠난 친구들 위해 시집으로 새 집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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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박규현 "먼저 세상 떠난 친구들 위해 시집으로 새 집 지었어요"

“계류자들은 다음과 같다. 박규현, 전수현, 백설이, 차도하 그리고 이 시를 끝까지 읽은 사람 모두. 언제든 이 집에 다녀갈 수 있고 언제든 이 집을 잊을 수 있다. 이 시를 읽는 동안에는 그럴 수 있다.”

박규현(29·사진)의 시 ‘계류자들’에 달린 주석이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를 최근 출간한 박 시인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에 제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세 이름은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제 친구들”이라며 “이 시를 쓴 뒤 비로소 제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의 이름을 활자로 이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친구들에게 이번 시집을 헌정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문학동네시인선 233번으로 출간된 <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는 박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박 시인은 2022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첫 시집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를 출간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시 쓰기가 새로운 애도와 우정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시 ‘계류자들’ 속에서 ‘나’는 조개껍질로 변해 친구들이 자신을 집에 데려가기를 꿈꾼다. 시, 그리고 시집 속에서는 죽어버린 친구들이 등장하는 이런 상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시를 계속 써야만 이 집에서 친구들과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인에게 ‘진짜 집’이란 곧 시집이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시집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고 새로운 우정의 단계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과 닮아 있다. 1장에서 주로 친구의 상실을 알게 된 마음을 시로 그려냈다면, 이승도 저승도 아닌 가상의 공간 ‘아오타다라’를 헤매는 2장을 거쳐 죽음을 인정하고 우정을 재건한다.

이야기의 장르가 다양한 시대에 시에 이토록 매료된 이유는 뭘까. 그는 “시는 저만 알아볼 수 있는 퍼즐 같다”며 “아무리 제 시를 소개하고 설명해도 저만 아는 감각과 감정이 있고, 그걸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해방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제가 제 시의 제1독자여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독자들이 읽어주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후회하지 않을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이번 시집도 열 달 동안 퇴고만 하고 새로운 시를 못 쓸 정도로 매달렸어요.” 박 시인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시 쓰는 일에 대한 산문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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