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전지적 독자 시점’을 리뷰하면서 제가 이런 비슷한 얘기를 쓴 한이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웹소설의 주인공은 착한 놈이 없는 것 같다고. 정확히는 착한놈이 주인공인 소설은 거의 다 망한 거겠죠. 이른바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선택압’이 작용한 거죠. 그래서 착한놈이 주인공인 소설이 안 보이게 됐죠.
공감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작품들이 선택받았을까요.
일전에 이런 제목의 스포츠 칼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한국 야구, 팬들 책임은 없나’
저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이다패스 일변도 웹소설, 독자는 책임 없나?’
지금 웹소설판에 서식하는 적잖은 독자들이 지독한 도파민 중독에, ‘사이다패스’입니다. 아, 사이다패스란 말이 혹시 생소하실까요? ‘사이다’와 ‘사이코패스’를 합친 신조어로 ‘고구마’ 없는 ‘사이다’ 전개만 추구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개를 하기 위해선 반필수적인 조건이 있죠. 주인공이 이타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타적인 선택은 필연적으로 고구마를 만들고, 고구마를 못 견디는 많은 독자는 떠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탄도 절레절레할 만큼 사악한 주인공이 나오는 무협 웹소설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은 ‘괴력난신’. 문피아에서 480만 뷰, 네이버 시리즈에서 3,7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인기작입니다. 매화 댓글창을 보면 독자 반응도 둘로 나뉘어요. ‘시원시원해서 좋다’. 그리고 ‘어우 더는 못 보겠다, 이만 하차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차하는 독자가 대다수였다면 흥행 못 하는 것은 물론 웹툰화도 안 됐겠죠? 동명 웹툰도 네이버웹툰 화요일 인기순 정렬 1위. 다시 말해, 이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주인공을 견딜 수 있다면, 네. 확실한 재미를 보장합니다.
주인공이 살인마인데 이 소설이 재밌는 이유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살인마는 악역입니다. 적당히 우리의 선한 주인공 좀 고생시키다 막판에 사살당하거나, 붙잡혀 죗값을 치르는 게 익숙하죠.
헌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냥 살인마도 아니고 ‘연쇄살인마’입니다. 1화에서부터 주인공의 별명은 낫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해서 ‘겸살귀(鎌殺鬼)’. 거기다 살인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전혀 거리낌이 없죠. 그리고 이런 주인공은 처하는 위기마다 예상을 깨는 ‘최선의 수’를 둡니다. 어느 정도 윤리의식이란 고정관념에 갇힌 독자들은 미처 생각도 못 한 행보를 보이며 사이다를 만듭니다.
소설의 도입부는 ‘양반’이에요. 살인죄로 붙잡혀 사형수가 된 주인공. 얼굴이 똑 닮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대타(총알받이)로 쓰려고 한 한 명문가의 자제(목경운)를 등장 직후 곧장 목을 비틀어 죽여버립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죠. “가짜 녀석이 뒈져버렸네?” 얼굴이 똑 닮은 목경운이 죽어버렸으니, 함께 동행했던 호위무사는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주인공을 목경운으로 둔갑시켜 명문가로 데려오게 됩니다. 네, 이 정도는 사형수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영악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편수가 좀 진행되다 보면, ‘배틀로얄’ 같은 상황이 나옵니다. 주인공을 포함해 대충 300명 정도가 이 배틀로얄 게임에 강제로 참여하게 됐다고 쳐요.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10개의 깃발이 있고, 깃발마다 8명씩 팀을 짜 동이 틀 때까지 버티면 됩니다. 단, 깃발 하나에 뭉친 인원은 반드시 8명이어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평범한 ‘범부’라면 깃발 개수 10개×8명이니까 80명 안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하겠죠. “으으,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라며 다른 경쟁자를 죽이기도 하고요.
주인공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요. 단언컨대, 주인공의 뇌 구조는 우리와는 다릅니다. 80명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8명을 남기기 위해 닥치는 대로 경쟁자를 죽입니다. 어차피 이번 관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경쟁을 치러야 한다면, 미리미리 경쟁자를 줄이자는 것이지요. 심지어 깃발을 부러뜨리기까지 해요. 부러진 깃발에는 8명이 모여도 소용이 없거든요. 그리고 환상의 피날레. 깃발은 하나,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15명이 남았을 때, 이렇게 말하죠. “자, (나 빼고) 7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싸워라.” 배틀로얄 규칙 자체가 흉악한데, 이걸 뛰어넘는 주인공이에요.
그리고 이런 식의 전개가 주는 장점은 뚜렷합니다. 정말 목이 막힐 일이 없이 사이다가 쭉쭉 들어가요. 윤리의식이라는 ‘브레이크’가 없으니, 어떤 난관이든 주인공의 영특함과 악랄함으로 통과해 나가는 것이지요. ‘잔혹함이 과하다’고 하차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지만, 오늘날 독자들이 원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소설인 건 분명합니다.
자, 아는 맛 들어간다!… ‘신조협려’ 그리고 포켓몬
2025년에 웹소설 리뷰를 하는데 고전 중의 고전 김용의 ‘신조협려’를 꺼낸다면 너무 올드할까요.
혹시 신조협려에 대해 모르는 풋풋한 독자님들을 위해 설명하면, 중국에서만 1998년, 2006년, 2014년, 2019년…. 무려 4회에 걸쳐 드라마화된 초대박 인기 무협 소설입니다. 국내에선 유역비님이 나온 2006년 판이 유명하죠.
그니까, 왜 대뜸 신조협려냐. 무려 60년도 더 전인 1959년에 연상연하, 그것도 모자라 물론 사제지간 커플링이 나오기 때문이죠. (심지어 남주가 처음 만났을 때 미성년이었으니 #역키잡)
그리고 이 소설 ‘괴력난신’의 주인공에게도 미모의 여자 스승이 있습니다. 이름하야 ‘청령’. 그런데 신조협려의 클리셰를 살짝 비틀었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데, 귀신입니다. 원한이 몹시 깊은 원령. 주인공을 돕고 가르쳐, 100년간 사무친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하죠.
아, 그리고 신조협려와 또 다른 점. 괴력난신에선 주인공이 이 청령과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청령을 철저히 이용하죠. 요즘 소설의 대세는 ‘노맨스’(노 로맨스)입니다.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안 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왜 노맨스가 대세인가 생각해보면, 나(독자)는 하지도 못하는 연애를 한답시고 스토리 진도 못 뽑을 일도 없고, 괜히 나중에 애인 지키겠다고 고구마를 먹일 일도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60년 넘게 흥행 수표로 인정받은 여자 스승에 나오는 것에 이어. 괴력난신에는 보증된 ‘아는 맛’이 하나 더 나옵니다. 바로 포켓몬-! ‘수집’이죠.
괴력난신의 주인공은 무협지치고는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원령을 ‘포켓몬’처럼 부릴 수 있는 능력이죠. 대충 포켓몬을 두드려 패 힘을 빼놓고 ‘몬스터볼’이나 ‘마스터볼’로 잡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원령을 패놓고 어찌어찌하면(스포일러) 주인공에게 귀속되는 ‘식신’이 됩니다. 사실 청령도 주인공의 식신 중 하나에요. 대략 피카츄 포지션? 강력한 포켓몬, 아니 원령을 모으면서 주인공도 점점 강해집니다. 심지어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처럼 원령도 점점 더 세져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한지우가 걷는 그 ‘왕도’를 따라 소설의 주인공이 걷는 것이지요.
괴력난신은 극강의 ‘사이다패스’에 이미 성공이 보장된 ‘아는 맛’을 곁들인 웹소설입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웹툰도 작화가 ‘미쳐서’ 함께 보기 좋죠. 웹소설이든, 웹툰이든 취향만 맞으면 중간에 끊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끝없는 도파민을 위해 사탄도 절레절레할 주인공을 탄생시킨 오늘날의 웹소설 독자들. 독자들의 취향은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까요. 더 자극적인 맛을 찾으려 할까요, 아니면 돌고 도는 ‘태극권’의 이치에 따라 슴슴한 맛으로 회귀하는 날도 있을까요.
뭐, 저는 뭐든 맛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