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선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이사] 롯데콘서트홀이 기획·제작한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5’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해 ‘스펙트럼’을 주제로 지난달 28일부터 1주일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공연은 ‘체임버 뮤직 콘서트 Ⅳ’(9월 1일 롯데콘서트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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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체임버 뮤직 콘서트 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라 제3번 E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롯데문화재단) |
이날 공연은 카바코스를 대신해 그가 선택한 젊은 거장들이 무대를 꾸몄다. 바흐의 대표곡부터 쇼스타코비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곡까지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E장조로 공연의 막을 열었다. 바흐 시대 음악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는지 양인모는 평소보다 더 섬세한 보잉(활로 연주하는 기법)으로 한치의 부족함 없이 완벽한 연주를 들려줬다.
두 번째 곡은 첼리스트 티모테우스 패트린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1번 G장조를 신선한 해석으로 연주했다. 패트린은 카바코스가 2022년 창단한 아폴론 앙상블 멤버다. 세계적인 솔리스트이기도 한 그의 실력을 증명한 호연(好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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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체임버 뮤직 콘서트 Ⅳ’에서 첼리스트 티모네오스 패트린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 G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롯데문화재단) |
2부 첫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알렉산드르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였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소프라노 황수미와 1부를 빛낸 양인모, 패트린, 그리고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가 함께 연주했다.
들어본 적 없는 곡이어서 무척 궁금한 작품이었다. 특히 첫 곡 ‘오필리어의 노래’에서 황수미는 생소한 러시아어로 노래를 했음에도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고독과 불안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음악을 통해 다른 공연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전하는 것, ‘클래식 레볼루션’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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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체임버 뮤직 콘서트 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소프라노 황수미, 첼리스트 티모테오스 페트린이 쇼스타코비치 ‘알렉산드르 블록의 시에 의한 8개의 로망스’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롯데문화재단) |
지휘자 김선아가 이끄는 고음악(바로크 이전의 음악) 전문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부른 바흐의 모테트 ‘예수, 내 기쁨’이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작은 오르간과 20여 명의 단원이 들려주는 음악은 다른 악기가 전혀 필요치 않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음악의 결정체였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2020년 시작해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퍼 포펜, 클라리네티스트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등이 예술감독을 맡아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왔다. 베토벤, 브람스, 피아졸라, 레너드 번스타인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 세계를 집중조명하는가 하면, 2024년에는 국내 교향악단 다섯 단체가 경합하는 이색적인 기획으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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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체임버 뮤직 콘서트 Ⅳ’에서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바흐의 모테트 ‘예수, 내 기쁨’을 부르고 있다. (사진=롯데문화재단) |
6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카바코스가 예술감독을 맡아 예년보다 더 알찬 구성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최근 공공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클래식 음악축제는 예산 삭감 등으로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롯데콘서트홀이 민간의 기획 역량만으로 ‘클래식 레볼루션’을 이어가고 있는 점은 국내 클래식 시장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일반 관객에게도 최고 수준의 공연을 감상할 기회라는 점에서 ‘클래식 레볼루션’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내년엔 어떤 연주자들이 ‘클래식 레볼루션’을 꾸밀지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