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감사 결과를 전면 부정하는 감사원을 보면서 감사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감사원은 직무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법(감사원법)으로 보장받고 있지만, 과거에 그 독립성과 중립성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별로 없다. 감사원 설치 근거를 둔 헌법에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고 명시한 게 문제의 발단인데, 그러다 보니 심하게 표현하자면 감사원을 전 정권에 대한 분풀이 수단으로 여긴 대통령이 적지 않았다.
감사원장은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다른 장관처럼 도중에 해임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과거에 종종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사원장을 ‘허수아비’ 총리로 ‘승진’시키는 ‘묘수’를 발휘해 사실상 해고한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 L감사원장과 이명박 정부 때 K감사원장이 그랬다고 한다. 그 정도로 대통령 입장에서 감사원은 정권의 사유물이자 비위를 맞추는 기관쯤으로 인식됐다는 방증이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시녀 역할에 충실해온 게 감사원이지만, 그런 감사원도 자신들이 과거 진행한 감사 결과를 셀프 감사한 적은 없다. 스스로 뒤집기에 나서면 자기 부정을 하는 꼴이어서 존재의 이유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감사원은 용감무쌍하게도 지난 정부 때 진행한 일곱 건의 감사를 모두 부인하고 특별조사기구(TF)까지 구성해 재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국가 통계조작, 원전 경제성 조작 등 정책감사가 대다수다. 이 감사는 모두 ‘정치·표적 감사’였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진행됐는데, 뜯어보면 납득이 안 되는 구석이 많다.
우선 지난 정부의 감사가 아무리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 표적 감사였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팩트 여부다. 감사 대상인 사안 또는 사건의 실체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월성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둘러싼 감사와 관련해 해당 공무원이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애시당초 감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TF 주장이지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공무원들의 감사 방해 혐의였을 뿐 경제성 조작 사건은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통계청이 집값과 소득 고용 통계를 입맛에 맞게 조작했다는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당시 감사가 강압적으로 이뤄졌다는 증거를 잡아내지 못한 상태다.
또 하나, TF는 지난 정부의 감사가 문재인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표적 감사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결론을 내려놓고 재조사하는 셀프 감사는 전형적인 정치 감사가 아닌가? 공직자들을 괴롭혀 의욕을 꺾게 만든다는 정책감사를 더 이상 안 하겠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지만 감사원은 이미 지난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대적인 정책감사를 예고했다.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원 역할은 두 가지다. 국가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회계감사’와 공직자 대상 ‘직무감찰’이다. 정책감사는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전 정권 손보기 같은 정치적인 목적에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원전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를 신임 감사원장에 내정하는 것은 또 뭔가. 감사원장 후보자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월성 1호기 수명 연장과 관련한 무효 소송을 주도한 인물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신한울원전 1호기 사용 허가 결정 당시 위원 9명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대통령실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복원할 적임자”라고 평했지만, 정치적 편향성이 다분한 사람을 앉힌 인사를 두고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감사 결과도 뒤집는 감사원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이참에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에서 빼내 국회로 보내든지 하는 근원적인 처방을 내리자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차라리 감사원을 없애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감사원은 갈수록 해답은 보이지 않고 골치만 아픈 국가기관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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