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상에 치우친 철강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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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상에 치우친 철강 탄소중립

최근 민간 기후단체가 국내 4대 철강기업의 이산화탄소 감축 실적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축 노력 미흡’이라는 평가와 함께 저탄소 철강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고로 생산량을 줄이고 전기로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권고를 담았다.

고로 방식은 철강 1t 생산에 약 2.3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약 0.7t을 배출하는 전기로 방식보다 약 3배 많다. 고로 방식은 고탄소 연료인 코크스를 환원제로 사용하지만 전기로 방식은 별도 환원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로를 전기로로 전환하고, 전기로를 재생에너지로 가동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하지만 철강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책상머리에서 계산한 단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제철 방식은 철광석을 용광로에서 녹여 신제품 철을 생산하는 고로 방식과 고철을 녹여 재활용 철을 생산하는 전기로 방식으로 나뉜다. 세계 철강 생산량은 연간 약 19억t이며 이 중 약 70%에 해당하는 13억t이 고로에서 생산된다. 나머지 6억t만이 전기로 몫이다. 이는 세계 경제를 유지하려면 매년 약 13억t의 신제품 철을 생산해야 하는데 고철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가 고로 생산량을 줄이고 전기로 비중을 높인다고 해도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줄인 고로 생산량만큼 지구상 어디에서는 철을 추가로 생산해야 할 텐데, 아마도 우리보다 비효율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특정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지구적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만 고로 생산을 줄이고 전기로 생산을 늘린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더욱이 충분한 대책 없이 고로 방식을 무작정 줄이면, 고급강 중심인 한국 철강 경쟁력만 상실할 위험이 있다. 고로가 고급강 생산에 품질과 원가 측면에서 여전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활용 종이가 펄프 기반 신제품 종이의 품질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후 대응과 산업 경쟁력의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국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은 수소환원제철에 있다. 철광석을 수소로 환원해 물만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고급강 생산 능력까지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문제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대량의 수소 공급이다. 국내 고로 생산량 4700만t을 전량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려면 약 235만t의 수소가 필요하다. 그것도 수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나 원전 기반 핑크수소가 거론된다. 하지만 그린수소로만 235만t을 생산하려면 태양광 기준 약 95GW, 해상풍력 기준 약 36GW의 신규 설비를 그것도 철강산업 전용으로 확보해야 한다. 현재 발전용 재생에너지 총용량만 34GW에 불과한 현실과 2050년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하면 꿈 같은 목표다. 경제성 문제는 별도의 난제다.

재생에너지에 집착해 그린수소만 고집하는 탄소중립 정책은 공중에 떠 있는 공상누각과 같아 실현성이 없다. 원자력 기반 핑크수소를 포함한 다양한 공급원을 모두 활용할 때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은 비로소 실현 가능한 실사구시 목표가 될 수 있다. 이념을 앞세운 공상누각 에너지전환 정책을 내려놓고 현실과 과학에 기반한 실사구시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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