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끝이 아닌 인생 전환”… 안동병원의 실험, 초고령 경북의 생존 전략 모델될까

4 days ago 7

27일 경북 안동시 수상동 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에서 박재일 임상병리팀장이 동료와 생화학 분석 장비를 다루고 있다. 안동병원 제공

27일 경북 안동시 수상동 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에서 박재일 임상병리팀장이 동료와 생화학 분석 장비를 다루고 있다. 안동병원 제공
“정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안동병원 진료지원부 박재일 임상병리팀장(64)은 27일 “일반적으로 은퇴를 준비할 나이지만 매일 병원 검사실로 출근해 환자 진단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병원 측은 “경험과 숙련도가 중요한 의료 현장 특성을 고려할 때 일정 기준을 충족한 인력의 계속 근무는 의료서비스 안정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안동병원은 지난해부터 ‘정년 이후 계속 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근무를 희망하는 직원에게 건강검진과 근무평가 등을 거쳐 계속 근무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최초 계약 기간은 3년이며 이후에는 1년 단위 심사를 통해 최대 만 70세까지 재계약할 수 있다. 단순히 연공서열에 따라 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업무 수행 능력과 건강 상태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구조다.

특히 의료 현장은 숙련 경험이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간호·검사·영상·응급 분야 등은 단기간 교육만으로 대체가 쉽지 않은 데다 지방 의료기관일수록 전문 인력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안동병원의 사례는 단순한 병원 인사 정책을 넘어 지방 의료 인력 구조 변화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신홍 안동병원 이사장은 “초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사회와 연결감을 유지하며 역할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조직과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정년 연장’ 논의는 정치권과 산업계를 넘어 의료 현장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인력난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북에서는 정년 연장이 지역 생존 전략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안동병원의 정년 이후 계속 근무제는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년 연장 필요성이 커지는 배경에는 경북의 급격한 고령화가 자리하고 있다. 경북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초고령사회 경북의 돌파구, 정년 연장’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의 고령화율은 25.25%로 전국 평균 19.41%를 웃돌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비율도 전국 평균 62%보다 낮은 58% 수준이다.문제는 청년층 유출과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동시에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과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경북은 이미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높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 공장을 못 돌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로 인해 정년 연장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노동력 유지와 지역경제 방어 차원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경북연구원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할 경우 고령층 경제활동 참여율이 30%에서 50%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고령층 빈곤율은 약 5% 감소하고 사회복지 지출 부담도 약 10%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외 주요국도 이미 정년 연장을 구조 개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은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까지 확대하며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독일은 연금 개시 연령을 67세까지 높이며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청년 일자리 감소 가능성과 기업 인건비 부담 문제가 대표적이다. 임금체계 개편 없이 단순히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다만 지방의 현실은 수도권과 다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년층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숙련 인력마저 대거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면 지역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초고령사회에서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안동병원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필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층의 경험과 기술은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며 “고령층의 경제활동은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체 자산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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