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가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저출생, 고령화를 ‘극복’할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지금 필요한 건 ‘적응’과 ‘변화’ 아닐까요. ‘적자생존’은 달라진 인구구조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에 적응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정년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기업들은 정년을 늘린다면 고령 직원의 임금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 들어 생산성은 떨어졌는데 연공서열에 따라 더 많은 월급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60세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월급 감소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대도 “정년 후 월급 줄어도 일할래”
지난달 취업플랫폼 인크루트에 의뢰해 직장인들에게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더 일할 수 있다면 60세 이전 임금에서 얼마만큼 감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이번 설문 조사에 직장인 1124명이 참여했다.응답자 10명 중 6명(66.6%)은 임금이 약 25% 줄어도 더 일하겠다고 답했다. 임금이 절반가량 깎여도 계속 일하겠다는 응답도 11.5%였다. 반면 임금이 줄면 일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은 19.8%였다.
이번 설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모든 연령대에서 임금이 줄어도 일하겠다는 응답이 그 반대를 크게 웃도는 점이다. 20대조차 ‘임금이 25~75% 줄어도 일하겠다’는 응답의 비중(74.3%)이 ‘임금이 줄면 일하지 않겠다’(25.7%)의 약 3배에 이르렀다.
이렇듯 모두가 ‘덜 받더라도 더 일하고 싶다’는 데 공감하지만 고령자의 월급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는 정년 논의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다. 월급을 너무 많이 깎으면 고령자의 근로 의욕이 떨어지고, 너무 적게 깎으면 기업이 고령자를 계속 쓰려는 유인이 떨어진다.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 진짜 문제는 ‘나이’ 아닌 ‘월급’
기업들이 정년을 두는 이유는 오래 다닌 직원일수록 월급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공공기관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회사일수록 호봉제(연공급)를 적용하는 비율이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6월 말 기준 국내 사업체 호봉급 운영 비율은 300인 이상 규모의 경우 58.4%지만, 100인 미만은 12.4%에 그쳤다. 임금이 근속연수에 따라 오르지 않는다면 기업에서 굳이 나이를 기준으로 직원을 내보낼 이유도 없다.지금 노동계가 ‘법적 정년 연장’을, 경영계가 ‘퇴직 후 재고용’을 고집하며 맞서는 것도 결국 임금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으로 임금 감소를 최소화하고 싶고, 경영계는 재고용을 통해 고령자 임금을 신규 직원 수준으로 낮추고 싶은 것이다.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 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탄생한 기형적인 제도가 임금피크제다. 당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면서, 임금 조정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모호한 조항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회사마다 자체적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그 유효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건건이 엇갈리면서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회적 혼란이 여전하다. 늘어난 정년이 무색하게 희망퇴직 바람은 ‘3말 4초’(30대 후반~40대 초반)까지 더 거세졌다.
● “임금 개혁 안 하면 모두가 피해자”
차라리 임금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하면 정년 논의가 오히려 쉬워질 수 있다. 정년 연장이냐, 재고용이냐 논쟁은 일단 미뤄두고 고령자 임금을 어떻게 조정할지부터 논의하자는 제안이다. 구체적인 임금은 개별 회사의 노사가 결정하지만, 고령자 고용의 틀을 새로 짜는 차원에서 정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여기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고용 방식은 덜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궁극적인 해법은 결국 임금의 연공성 완화다. 과거 고도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연공급 제도는 저성장 시대에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지난해 10월 발간한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 보고서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7%의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년이 임박한 직원들만 나이에 따라 무작정 월급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임금체계의 큰 틀을 바꿔야 한다.
초고령사회,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려면 임금의 연공성을 줄이고, 맡은 업무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직무급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개별 기업 노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직무별 임금 정보 등 필요한 인프라와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임금체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노동연구원 보고서의 경고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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