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경기 침체 장기화로 서민들의 자금줄이 마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중 서민금융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카드론 금리 급등과 제2금융권 대출 축소로 서민들이 급속히 ‘금융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21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추경안에서 ‘햇살론 유스’와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등 정책 서민금융 관련 예산 515억원을 증액했다. 햇살론 유스는 사회 초년생과 청년층을 위한 저리 대출 상품으로, 예산이 150억원 늘었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신용점수 하위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보증 상품으로 365억원이 증액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약 2100억원의 자금공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원 대상도 기존 12만 3000명에서 19만 3000명으로 약 57%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추경안에 대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찔끔 지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전체 정책 서민금융 공급 규모는 10조 7500억원으로 전년보다 3650억원 증가했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은 은행 출연금 인상(출연요율 0.035%→0.06%)으로 확보된 민간 재원이다.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올해 본예산에서 작년보다 1100억원을 삭감한 상태였고 이번 추경을 통해 되살린 365억원은 삭감분 일부에 그친다. 소액생계비대출과 사업자 햇살론도 본예산에서 감액했지만 추경에서 추가 지원은 없었다. 실질적으로 예산을 확대한 것은 근로자 햇살론 한 종류뿐이다.
반면 서민의 자금난은 악화일로다. 카드론 금리는 평균 14.83%까지 상승해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수준에 근접했고 신용점수 700점 이하 저신용자의 카드론 금리는 17.66%에 달했다. 법정 최고금리(20%)에 바짝 다가선 셈이다. 이자 부담이 커지며 연체율도 오르고 있다. 지난해 카드사 전체 연체율은 1.6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자 제2금융권은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저축은행 79개사 중 신용점수 600점 이하 고객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은 곳은 절반을 넘었고 대부업체조차 신규 대출을 줄이며 금리를 높이고 있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에서 서민이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제도권에서 밀려난 서민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지난해 불법 사금융 관련 신고 건수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금융 사각지대 확대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부작용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체율 급등과 재정 부담을 고려할 때 무리한 공급 확대는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에선 위기 상황일수록 공공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서민금융 관련 예산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에선 햇살론15 예산을 올해 900억원에서 550억원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탄핵 정국 등으로 증액이 무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위기 시기일수록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금의 서민금융 추경안은 ‘현상유지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금융 취약계층이 사금융으로 빠지지 않도록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책금융 예산을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