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철저하지 못한 현지화와 시장에 대한 얕은 이해가 가장 큰 실패 요인이죠. 일본 소비자들은 디테일에 민감합니다. 기업 문화 또한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아 충분한 재무적 준비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가 일본 진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 관계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묻자 양영준 와이제이컴퍼니(YJ Inc.) 대표는 이같이 답했다. 와이제이컴퍼니는 일본과 한국 양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에 진출과 정착 과정을 지원하는 크로스보더 고 투 마켓(Go-To-Market) 전문 기업이다.
양영준 대표는 “장기침체에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국이자 소비자의 구매력이 높은 시장”이라며 “한국 기업이 글로벌 진출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발전시키는 데 강력한 레퍼런스를 쌓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는 양영준 와이제이컴퍼니 대표를 일본 도쿄 현지에서 만났다. 양영준 대표는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 유럽, 미국, 한국 시장을 넘나든 크로스보더 비즈니스 전문가다. 딜리버리히어로 재팬(우아한형제들)에서 사업개발을 총괄하며 현지화 전략과 실행 경험을 쌓았다.
최근엔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 ‘스시테크 도쿄 2025’의 한국 공식 앰배서더로 임명돼 한일 스타트업 간 네트워킹과 협력 기회를 지원하고 있다. 오는 5월 7일에는 일본 벤처캐피털(VC) 픽사 알고리즘 펀드(PKSHA Algorithm Fund), 인베스트서울과 함께 도쿄에서 피칭·네트워킹 이벤트를 개최한다. 일본 VC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대상으로 일본 진출을 계획 중이거나 이미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 10개사가 IR 발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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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준 와이제이컴퍼니 대표. (사진=와이제이컴퍼니) |
韓 본사 전략 日서 복붙하면 실패 확률 ↑ 와이제이컴퍼니는 기업에 시장 진입부터 스케일업까지 전 단계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현지 시장 조사 △파트너 발굴 △개념검증(PoC) 설계·실행 △인수·합병(M&A) 자문 등을 아우른다.
양영준 대표는 “많은 한국 기업이 본사 방식을 복사해 붙여 넣기 하듯 일본에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10년 넘게 이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시장 진입 단계에서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유한 예측 모델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양 대표는 이어 “이를 토대로 창업 전 2~3년간 양국 기업의 진출을 도우며 양국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걸 깨달았다”고 창업 계기를 밝혔다.
그는 와이제이컴퍼니가 단순 자문을 넘어 기업의 투자 유치와 M&A까지 돕는 실행 중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차량광고 플랫폼 스타트업 에센이 대표 사례다. 에센은 도쿄대 박사과정 학생이 창업한 회사로 양 대표는 2022년부터 고문 역할을 맡고, 엔젤 투자를 진행했다. 에센은 신한벤처투자와 글로벌 브레인이 한일 최초로 공동 설립한 투자펀드의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돼 현지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일본은 M&A나 기업공개(IPO) 시장 환경이 구조화돼 있고 유연하다”며 “한국은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극대화해 터뜨리는 방식이라면, 일본은 조기 IPO 후 장기적으로 가치를 축적하는 구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에서 IPO는 목표가 아니라 중간 종착지에 가깝다”며 “IPO 이후에도 창업자가 남아 계속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올해 日서 뜨는 분야는 ‘DX·AI·헬스케어’ 잃어버린 30년은 끝났다고 평가할 정도로 활기를 찾은 일본 자본시장에서 올해 주목하는 분야를 묻자 그는 △디지털 전환(DX) 솔루션 △인공지능(AI) 활용 서비스 △헬스케어를 꼽았다.
AI의 경우 인프라 자체보다는 원천 기술을 잘 가공한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서비스형 AI가 주목받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는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를 맞은 만큼 노동력 부족 현상을 대비해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일부 일본 VC 중에서는 K컬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콘텐츠, 패션, 뷰티 섹터에 특화된 투자 전략을 취하는 곳도 생겼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일본 내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투자를 계획하는 글로벌 펀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구체적인 투자 성과와 성공적인 펀드 결성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일본 출자자(LP)들은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신뢰’와 ‘관계의 지속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지 진출 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는 90% 확정된 사안이어도 100%가 아니면 완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 문화를 언급하며 “이곳에서는 신중함, 투명성, 그리고 일관된 실행력이 성과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일본 진출을 단기전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과 시장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라며 “시장 조사, 현지화 전략, 투자 계획은 기본이고 최소 3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시야와 실행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