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전세를 없애려는 것 같아요. 이젠 씨가 마를 거 같네요.” “전세의 월세화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늘어나는 주거비는 어떻게 감당합니까?”
정부의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된 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등에서는 이 같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이번 대책으로 전세 물건 감소 추세가 이어지며 임대차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앞으로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월세 시장 불안이 커지며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세 씨가 마른다"
17일 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 소규모 아파트뿐만 아니라 1000가구 이상 대단지도 전세 물건이 대폭 감소하는 추세다.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1021가구 규모의 ‘도화현대1차’ 아파트는 전세 물건이 단 2가구(전용면적 54㎡ 1가구·147㎡ 1가구)뿐이다. 초대형 단지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은 전체 1만2032가구 중 전세 물건이 196가구(1.6%)밖에 없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4418가구로 집계됐다. 연초(1월 1일·3만1814가구)보다 23.2% 줄어든 물량이다. 경기 지역은 연초 3만1110가구에서 이날 2만918가구로 32.8% 감소했다. 인천은 6743가구에서 3941가구로 41.6% 급감했다.
문제는 앞으로 전세 물건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서울 25개 자치구와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서 아파트나 동일 단지 내 아파트가 1개 동 이상 포함된 연립·다세대 주택을 구입하면 ‘2년간 실거주 의무’가 부여된다. 최소 2년간 전세 매물로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회사나 자녀 교육 등을 위해 전세 물건을 찾는 1주택자의 자금 마련도 어려워졌다. 오는 29일부터 1주택자가 수도권에서 전세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 상환분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앞서 1주택자의 전세 대출 한도를 2억원으로 줄인 데 이은 조치다.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무주택자·지방 전세 대출에도 DSR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세 자금 조달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부는 ‘전세 실종’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는 불만 섞인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역대 최고치 찍은 '월세지수'
'전세의 월세화'로 임차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29.7을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5년 전인 2020년 9월(92.1)과 비교하면 40.8% 뛰었다. 경기와 인천 월세지수도 지난달 각각 129.2, 134.8을 찍으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파트 입주 물량도 갈수록 줄어들어 임대차 시장 불안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입주 물량은 올해 3만6302가구에서 내년 1만4067가구로 2만2235가구(61.3%) 급감한다. 경기 지역도 7만3810가구에서 5만3555가구로, 인천은 2만1414가구에서 1만3677가구로 줄어든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함께 입주 물량 감소까지 더해져 전·월세 물건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전세 시장이 축소되면 일부 수요는 중저가 아파트 매매로 옮겨가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월세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월세 급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정부 대책으로 구매 심리가 억제돼 내 집 마련 수요 상당수가 임대차 시장에 머무를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하, 입주 감소, 대출 규제 등으로 전셋값과 월세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정락/손주형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