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올라도 투자자가 수익을 낼 수 없도록 발행사가 채권 전량을 되살 수 있는 ‘콜 100%’ 전환사채(CB) 상품이 코스닥시장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증권사 발행어음 및 종합투자계좌(IMA) 자금이 코스닥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며 발생한 기형적 현상이다.
◇ 유행처럼 번지는 ‘콜 100%’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상신이디피와 비나텍, 차이커뮤니케이션, 에코앤드림 등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콜 100% 조건의 CB 발행을 마쳤거나 추진 중이다. 이들 상품은 1년 만기 금리가 연 2% 수준으로 낮다. 발행 기업이 원하면 투자자 의사와 상관없이 채권 전량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도 붙어 있다.
상장사 CB 투자자는 안정적인 이자수익과 더불어 주가 상승 때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받을 수 있는 자본 이득을 동시에 추구한다. 콜 100% 조건이 붙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기업이 콜옵션을 행사해 채권을 가져가 버리면 투자자는 주식 전환의 기회를 잃는다. 시장 금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저금리 대출’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품이 등장한 건 규제 때문이다. 오라이언자산운용과 수성자산운용 등은 지난해부터 성호전자와 대진첨단소재, 와이씨켐 등이 발행한 콜옵션 100% CB를 코스닥벤처펀드를 통해 사들이기 시작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설정 후 6개월 이내에 자산의 50%(신주 35%, 구주 15%)를 벤처기업 신주 등에 투자해야 소득공제 혜택과 공모주 우선 배정(30%)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펀드 설정은 했는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요건 채우기용으로 수익성이 제로에 가까운 콜 100% CB 상품을 대거 매수한 것이다.
시장이 ‘발행 기업 우위’로 재편되며 수수료 체계도 왜곡되고 있다. 통상 증권사는 자금을 조달하는 발행 기업에서 수수료를 받지만 최근에는 CB 물량을 받아 가는 운용사로부터 투자금의 약 2%를 수수료로 챙기는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발행 기업은 연 2% 수준의 저금리로 돈을 빌리면서 수수료 부담까지 덜 수 있다.
시장에선 콜옵션 100% CB 상품이 투자자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을 명시한 자본시장법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CB 상품은 담보가 없고 신용 기반으로 돼 있어 부실 위험이 큰 데다 잠재적 수익(콜옵션 기회)을 제3자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모험자본의 ‘묻지마 투자’
문제는 이런 ‘묻지마 투자’의 수혜가 재무 상태가 건실하지 못한 기업들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콜옵션 100% CB를 발행한 비나텍의 부채비율은 158.5%로 지난해 말(109%) 대비 대폭 높아졌다. 2차전지 기업 에코앤드림도 지난해 매출 1419억원, 영업손실 6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으나 콜옵션 100% CB 발행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코스닥벤처펀드 급증이 코스닥시장의 자금 조달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업이 조달한 자금을 본래 목적이 아니라 금융상품 매입 및 다른 법인 지분 투자에 활용하더라도 조달 비용보다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여서다. 극단적으로는 연 2% 이율로 조달한 금액을 시중 정기예금에 맡겨도 매년 원금의 1~2%가량 차익이 생긴다.
발행사의 유동성이 악화하면 담보도 없는 신용 기반의 CB가 부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회사채를 발행하면 연 8~10%의 고금리를 물어야 할 중저신용 기업이 정부의 모험자본 육성책을 이용해 연 2%대 저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자를 낮추는 대신 지분을 제공하는 CB 본연의 기능이 사라진 기형적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코스닥벤처펀드 확대가 벤처·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코스닥시장 기업이 연구개발(R&D)과 신사업 투자 자금을 확보할 방법이 CB 발행밖에 없다는 논리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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