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스테이블코인·수탁 3대 분야 겨냥
기관간 MOU 넘어 지분 확보 경쟁 가열
해외 가상자산 기업 국내 진출도 본격화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파트너십 발표와 지분 인수 경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29일 웹3 전문 리서치 회사 타이거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 생태계에 속한 약 150개 기업들이 196건의 협력 관계를 맺은 것으로 파악된다.
타이거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 구도는 테이블코인, 토큰증권(STO), 수탁(가상자산 보관)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다만 단순 업무협약(MOU) 체결 소식은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일정이 빨라야 올해 하반기 이후로 지연되면서 실제 기관간 협력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 상용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규제가 완비되기 전 디지털 자산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전통 금융기관들이 진행한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인수다. 이달 들어 하나은행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힌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한화투자증권이 기존 지분에 더해 추가 3.9% 취득을 결정했다.
지난 28일에는 삼성그룹 3개 계열사(삼성증권, 삼성SDS, 삼성카드)가 합산 4%의 두나무 지분을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사들였다.
앞서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비금융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지난 2월에 코빗 지분 92.06%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과 글로벌 거래소 OKX의 코인원 지분을 각각 20%에 인수하는 계약도 29일 마무리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대기업와 전통 금융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 경쟁에 나선 이유에 대해 타이거리서치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단순한 코인 매매 수수료 플랫폼을 넘어, 향후 스테이블코인, 수탁, 토큰증권, 실물자산(RWA)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핵심 고객 접점으로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은행과 증권사는 가상자산사업자(VASP)와 같은 취득이 까다로운 라이선스를 우회적으로 획득하는 동시에 거래소가 보유한 방대한 사용자와 유동성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거래소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선 여전히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 장벽이 남아 있고, 각기 다른 신사업 전략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국내 STO 시장은 코스콤 중심의 컨소시엄과 신한투자증권 중심의 조각투자 연합이라는 두 축으로 나뉘는 모양새다.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해외 거점을 활용해 이들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택했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가 지분 76.6%를 보유한 증권망 운영 기관인 코스콤은 ‘증권사 공용 인프라 제공’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춰 특정 발행사와의 독점 계약 대신 11개 증권사를 자사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모델을 추진 중이다.
발행 및 유통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예탁결제원 총량관리 기준에 맞춘 인터페이스를 확보해 중립 인프라 사업자 지위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달리 신한투자증권은 STO 인프라를 빠르게 도입하며 자체 생태계를 다져왔다. 2022년 람다256과의 기술 검증(PoC)을 시작으로 2024년 연합 플랫폼 ‘PULSE’ 출범, 2025년 멀티플랫폼 계좌 통합 서비스 공식화가 그 결과다.
2025년 한 해에만 투자계약증권 발행 10건에 계좌관리기관으로 참여했고 장외거래소 NXT의 대주주 지위까지 확보해 발행부터 유통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체 체계 안에 구축했다.
한편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인프라 정비를 기다리는 대신 해외로 직행했다. 홍콩에서 디지털채권을 발행하고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로부터 디지털자산 리테일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오는 6월 중 MTS를 출시해 현지 개인 투자자 대상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JP모건,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이 참여하는 DTCC 주도 토큰화 워킹그룹에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류해 글로벌 표준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향후 국내 STO 인프라가 글로벌 표준과 연동되는 시점에 규제 정합성과 협상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카드사, 거래소, 핀테크, 인프라 기업이 저마다의 강점을 내세워 각기 다른 경로로 진입하고 있다.
카카오 그룹은 카카오톡,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가 공동 TF를 구성해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 지역화폐를 아우르는 ‘슈퍼월렛’ 구축을 추진 중이다. 그라운드X 시절부터 카이아(Kaia) 퍼블릭 체인을 운영하며 축적한 인프라가 강력한 무기다.
카이아는 이미 테더(USDT)를 네트워크에 배포해 실질적인 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기존 결제망을 블록체인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4월 솔라나와 MOU를 체결한 신한카드는 그 이전부터 솔라나, 비자, 마스터카드, 파이어블록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해 이미 1차 기술 검증을 마쳤으며, 지갑과 스마트계약 등 6개 분야의 고도화 테스트를 이어가며 기존 카드 결제 인프라를 블록체인 레일로 옮겨오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거래소 진영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우회로로 삼았다. 두나무는 자체 블록체인 ‘기와(GIWA)’를 기반으로 네이버파이낸셜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빗썸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서클, WLFI 등과 손잡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망을 먼저 확보하는 방향을 택했고, 토스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사업도 논의 중이다.
다만 현 시점에선 디지털자산기본법 법제화가 지연되면서 한국은행의 입장처럼 은행 과반 지분(50%+1주) 지분 컨소시엄만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부여할지,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TF와 민간 업계의 주장대로 핀테크 기업에도 진입 기회를 부여할지를 놓고 구체적인 정부 방침이 정해지는 게 관건이다.
수탁 시장에선 네 곳의 주요 수탁사가 저마다 국내외 금융기관 및 기술 파트너를 확보하며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KODA는 KB국민은행과 해시드, 그리고 해치랩스가 공동 설립자로 나섰다. 전통 금융 자본과 가상자산 전문 VC가 결합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이후 한화투자증권, IBK캐피탈, 교보증권이 투자자로 참여했고 삼성화재와 수탁 전용 보험 계약을 체결해 안정성을 보완했다.
KDAC은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전통금융 주도형 수탁사다. NH농협은행은 또 다른 수탁사인 카르도 설립 시 출자했다가 KDAC과의 합병을 거쳐 주주로 편입됐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KDAC은 국내 5대 은행 중 두 곳이 주주로 참여하는 은행 연합 구조를 갖추게 됐다.
BDACS는 기술과 파트너십 확보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택했다. 우리은행과의 협력, 갤럭시 및 GK8 등 해외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수탁·결제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서클(Circle)과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1’을 서클의 아크(Arc) 블록체인에 발행하기 위한 MOU를 체결하고 현재 PoC를 진행 중이다. KRX 주도 KDX 컨소시엄에서는 유일한 가상자산사업자(VASP) 기업이자 주요 수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비트고코리아(BitGo Korea)는 글로벌 수탁 강자 비트고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 상장사인 비트고는 7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수탁하고 전 세계 비트코인 온체인 거래의 약 20%를 처리하는 대형 기관이다.
국내에서는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각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금융 자본과 통신사 자본이 결합된 독특한 주주 구조가 특징이다.
다만 이들 수탁사들의 경우 시장에선 지난해 일제히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기관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에 길목만 먼저 마련해 둔 초기 시장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타이거리서치는 설명했다.
타이거리서치는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 3대 부문이 모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기술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금융 시장 환경에 맞게 디지털자산 시장 인프라를 재편하려는 유력 후보 기업으론 LG CNS, DSRV, 알투스(구 비하베스트) 3곳을 꼽았다.
전통 IT 서비스 기업 중에서는 LG CNS의 행보가 독보적이다. 2018년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모나체인’을 출시한 이후 한국조폐공사의 지역화폐 플랫폼을 통해 220여개 지자체에 서비스를 공급하며 운영 노하우를 쌓았다.
LG CNS의 허가형 블록체인 경험은 CBDC와 STO 사업 수주로 이어져, 한국은행 CBDC 프로젝트 ‘한강’의 주사업자로서 예금 토큰을 활용한 국고보조금 집행 시스템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관용 CBDC와 민간 디지털 통화를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구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며 전통 금융의 보안과 절차를 블록체인에 이식하는 역량을 확보했다. 아울러 코스콤의 STO 공동 발행 플랫폼과 미래에셋증권의 STO 플랫폼을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 CNS는 자산을 직접 발행하기보다 은행의 발행·유통 플랫폼 구축, 결제 사업자 대상 SaaS 제공, 증권사 디지털자산 결제 플랫폼 구축이라는 세 축을 공략 중이다.
블록체인 전문 인프라 기업 중에서는 DSRV가 금융기관의 온체인 진입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DSRV는 70개 이상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운영해온 밸리데이터 및 인프라 기업으로, 4조원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으며 이더리움 스테이킹 규모는 국내 1위, 글로벌 9위권에 달한다.
DSRV는 ‘DSRV 포털’을 통해 금융기관이 지갑, 결제, 토큰화, 수탁, 스테이킹 기능을 API와 대시보드 형태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금융사는 직접 노드와 보안 체계를 구축하지 않아도 기관용 월렛, 정기 결제, 토큰 발행 및 소각, 커스터디 등의 기능을 즉각 연동할 수 있다.
또한 가상자산사업자(VASP),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SOC 1 Type 1 인증을 기반으로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규제와 보안 통제 요건을 완벽히 충족하며 내부통제 리스크를 대행한다.
파트너십 역시 SBI 리플아시아와의 한·일 규제 맞춤형 송금 인프라 공동 연구, 서클과의 기관용 USDC 발행·상환 및 정산 체계 구체화, BC카드와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협약 등 실질적인 결제 레일 구축에 맞춰져 있다. 최근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해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도 마련했다.
알투스(구 비하베스트)는 금융기관의 기존 레거시 시스템과 블록체인 환경을 연결하는 하부 레이어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2018년 설립 이후 코스모스(Cosmos) SDK 기반 EVM 체인 개발에 참여해왔고 여러 상용 네트워크를 직접 구축해온 40명 이상의 연구자 조직이다.
알투스는 ‘Ault 블록체인’에서 RWA 및 결제 중심 기관용 L1의 프로토콜 엔지니어링을 담당했고, 2025년에는 비트코인 스테이킹 L1 ‘바빌론(Babylon)’의 EVM 통합과 보안 감사를 지원했다.
금융기관 대상으로는 레거시 시스템과 블록체인 실행 환경을 잇는 온·오프체인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 설계, RWA 토큰화, 허가형 거래소, 기관용 지갑 인프라를 금융권 요건에 맞춰 바닥부터 구축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현재는 선택적 데이터 공개를 지원하는 캔톤 네트워크 아키텍처와 1M TPS를 목표로 하는 모듈형 블록체인 프레임워크인 커먼웨어 스택 R&D를 병행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는 “시장의 중심축이 투기적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제도권 기관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며 “솔라나가 신한카드와 손잡고, 아발란체가 미래에셋의 파트너로 채택되는 등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해외 가상자산 기관들의 최우선 목표가 국내 거래소 상장이나 거래량 확보가 아닌 금융기관 및 대기업과의 인프라 협력이 됐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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