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부터 제작 시스템까지… 한국 오페라의 산적한 과제들

1 week ago 7

오페라 <돌하우스>의 한 장면 / 사진. 클레멘스 k. 토마스 제공.

오페라 <돌하우스>의 한 장면 / 사진. 클레멘스 k. 토마스 제공.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없어 제작 기간도 짧고, 돈 들여 만든 셋트는 바로 폐기해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국내 음악대학 교수들과 오페라 산업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새로운 오페라 장르의 개발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나온 반응이다. 이번 포럼은 20일 서울 중구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을 주제로 열렸다.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에서 제작극장 부재와 공연장의 대관 중심 공연 구조로 인한 짧은 제작 기간, 국내 오페라 교육의 문제점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날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은 하나 같이 "한국에는 작품을 장기적으로 축적할 시스템 자체가 부족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행사는 큐트 오페라 <돌하우스>의 주요 장면 소개와 함께 '예술적 관점'과 '관객·제작의 관점'이라는 두가지 주제에 대한 공개 토론으로 진행됐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첼리스트 박새롬이 토론의 진행을 맡았다. 작곡가 최우정 서울대 교수와 성악가 박재은, 음악학자 이민희와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등이 참여해 80여명의 참석자들과 120분 간 한국 현대 오페라가 마주한 현실과 관객 개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참가자들은 이날 영상을 통해 본 큐트 오페라 <돌하우스>에 대해 "단순히 귀엽고 가벼운 스타일이 아니라 무대에서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새로운 감각적 실험을 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이 오페라는 독일 작곡가 클레멘스K. 토마스가 쓴 작품으로 2024년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작곡가 클레멘스 k. 토마스 / 사진. 클레멘스 k. 토마스 제공.

작곡가 클레멘스 k. 토마스 / 사진. 클레멘스 k. 토마스 제공.

토론 도중 영상으로 공개된 <돌하우스>의 한 장면은 한 채식주의자가 소시지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중 '입술은 침묵하고'를 패러디한 음악과 함께 비건이 소시지를 먹지 않기 위해 인내하는 장면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영상의 한 대목을 테너 김은국이 한국어 가사로 시연해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현대 오페라 전문 음악학자 이민희는 "엄숙하고 거대한 전통 오페라 문법에서 벗어나 일상적 언어와 친근한 시·청각 요소를 활용해 동시대 감수성을 끌어오려는 시도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채식주의와 소비문화, 기후위기 같은 동시대 이슈를 오페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매우 실험적"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표면적으로 귀여움을 뜻하는 '큐트(cute)'라는 감수성과 현대 오페라의 접점을 탐색하는 자리였지만, 토론은 자연스럽게 한국 공연예술계의 현실로 이어졌다. 단순한 미학적 논쟁을 넘어 현재 한국 오페라 생태계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논의했다.

'예술적 관점'에 대한 토론에서 패널로 참여한 최우정은 "한국의 현대 오페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작품이 별로 없다"라고 답했다. "국내에 '창작산실'이라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말에 음악과 노래, 무용, 시, 내러티브를 뜻하는 '악가무시사'라는 표현이 있다"며 그것이야말로 오페라의 정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오페라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서양 오페라의 형식 안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라고 답했다.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한 경험이 잇는 소프라노 박재은 이화여대 부교수는 한국 음악 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유행처럼 특정 아리아를 선곡해 실기 수업에 들어온다"며 "반면 독일은 오페라극장이 시즌마다 한 작품 이상의 현대 오페라를 선보이고, 대학에서도 자연스럽게 현대 음악을 접하는 환경이다"고 말했다.

'관객·제작의 관점'에 대한 토론 중 윤호근은 "큐트 오페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린이 오페라를 떠올렸다"며 "오페라는 단기간에 자리 잡는 장르가 아니라 꾸준한 교육과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페라는 작곡뿐 아니라 음악, 창작, 미술, 기술이 결합된 '문화방정식'이다"라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자본이 없으면 오페라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오페라를 누가 보러 오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와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을 예로 들었다.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세대를 넘어 정서에 스며드는 작품이 한국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한국의 현대 오페라와 큐트 오페라의 가능성 포럼 현장 / 사진. 조동균

이날 현장에 '한국 현대 오페라의 현실과 과제'를 묻는 질문이 적힌 화이트보드에는 "오페라는 왜 재미가 없을까", "제작극장", "전문 프로듀서 양성" 같은 메모들이 빼곡히 적혔다. 참석자 대다수는 "한국의 공연산업은 여전히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작품을 장기적으로 제작 및 발전시켜 재공연하는 '공연 유통 시스템'이 정착되기 어렵다"는 패널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행사에 참여한 사라 데버럴 영국문화원장은 "단순히 새로운 오페라 장르의 가능성을 넘어 한국 현대 오페라가 과연 관객과 오래 호흡할 수 있는 언어와 제작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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