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으세요 … 자기 존귀함 모르면 남의 삶 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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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으세요 … 자기 존귀함 모르면 남의 삶 살게 돼"

입력 : 2026.05.20 17:50

봉선사 주지 호산 스님 부처님오신날 인터뷰
소림사 영화 보고 소년 출가
최가온 키운 '스노보드 대부'
젊은층 불교 열광하는 이유
그들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
나를 믿는 힘 키우는게 수행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접견실 '삼소각' 앞에서 호산 스님이 호탕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기자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접견실 '삼소각' 앞에서 호산 스님이 호탕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기자

세조가 묻힌 광릉으로 가는 숲길에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봉선사(奉先寺)는 그 길 중간에 자리 잡은 절이다. 예종이 '선왕(세조)을 받든다'는 뜻으로 이름을 짓고, 현판을 직접 써 내린 능침사찰이다.

오는 24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이 절의 주지 호산 스님(60)을 만났다. 스님은 접견실 현판인 '삼소각(三笑閣)'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세 번 웃자는 뜻입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번뇌를 내려놓고 웃음을 가득 안고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스님은 "조카(단종)를 죽인 세조가 말년 심각한 종기로 고생하며 불교에 의존하는 마음이 커졌다"며 "사찰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축원하는 전통도 이 시기 왕실 원찰을 중심으로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선사는 승려 50여 명이 수행하는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자 경기 북부 최대 사찰이다. 말사인 양주 회암사 주지에 조계종 최초로 외국인 출신인 인공 스님을 발탁한 것과 봉선사에서 '반려견과 함께하는 선명상 축제'를 개최한 것 모두 호산 스님의 결정이었다. 파격의 정점은 그가 '스노보드계의 대부'로 불린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대회 '달마배'를 25년째 이끌어온 스님은 올 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값진 결실을 보았다. 최가온, 김상겸, 유승은 선수를 비롯한 간판스타들은 모두 어린 시절 이 대회에서 실력을 키운 '달마 키즈'다.

"스노보드 선수들은 희망이 많지 않아요. 프로팀도 연봉도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설상 종목에서 네 종목이나 결승에 올랐어요. 우리 국민은 메달만 보지만 그 결승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겁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설원을 누비며 젊은 세대와 교감하는 그에게 '힙한 스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젊은이들이 최근 불교에 열광하는 이유는 불교가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믿을 사람이 없다 보니, 결국 자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거죠. 지금의 청년들은 아파트값 때문에 희망조차 못 느껴요. 경제는 성장했지만, 자살률 세계 1위에서 보듯 마음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은 우리 존재가 모두 존귀하다고 보셨습니다. 자기 존귀함을 모르면 남의 삶을 살게 됩니다. 본래 나의 본질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고결하고 존귀하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 3독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경남 진주 출신의 스님은 중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불교 교리를 깊이 알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당시 유행하던 소림사 영화를 보고 무술을 하는 스님들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막상 절에 들어와 보니 묵묵히 수행하시는 스님들의 뒷모습 또한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더군요."

이후 치열한 수행의 길로 접어든 스님은 20대 시절,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하는 '장좌불와 용맹정진'을 21일간 이어갔다. 또한 2019년에는 엄동설한 속에서 90일간 천막결사를 치러냈고, 2023년에는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1167㎞에 달하는 도보 순례를 완수했다. 특히 인도 성지순례 당시에는 극심한 토사곽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부처님께서도 극단적인 고행 끝에 비로소 '중도(中道)'라는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고행 그 자체가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몸소 겪어본 것과 전혀 해보지 않은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나태함일 뿐입니다."

인도 성지를 돌아다니며 부처의 전법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는 스님은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늘 길 위에서 전법했다"며 "한국에서도 지금은 깨달음 자체보다 불교 에너지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시대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스님과 만난 날은 분명 봄이었지만 한여름처럼 땀이 줄줄 흘렀다.

"계절에서 봄과 가을이 사라지듯, 마음도 점점 뜨겁거나 차갑거나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평정심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틈날 때마다 디지털 도파민에서도 벗어나는 연습을 하세요. 그래야 예기치 못한 재앙이나 악재가 닥쳤을 때 버텨낼 정신력이 생깁니다. 평소에 연습해 두지 않으면, 당장 주식이 급락했을 때 10년, 20년은 늙어버립니다."

[남양주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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