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를 맞아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에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선 기간 이재명 대통령이 ‘상장사 자사주 원칙적 소각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건 데 따른 것이다. 자사주 소각으로 유통 주식 수가 줄면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져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급등하는 ‘자사주 부자’ 종목들
8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자사주 보유 비율(보통주 기준)이 10%를 넘는 상장사는 올해 1분기 기준 230곳으로 집계됐다. 대선 공약에서 언급된 자사주 소각 제도화의 구체적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기대가 선반영된 결과다.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보유 한도를 설정해 이를 초과하는 주식을 강제 매각하게 하거나 자사주 소각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등을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중소형 증권사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졌다. 자사주 보유 비율 53.1%로 상장사 중 1위를 기록한 신영증권을 비롯해 부국증권(자사주 보유 비율 42.73%), 대신증권(25.12%) 등이 주목받았다. 지주사도 마찬가지다. 롯데지주(32.51%), 대웅(29.67%), SK(24.8%) 등의 주가가 대선 이후 연고점을 경신했다.
중소 상장사의 주가 개선 흐름도 가시화하고 있다. 기관과 외국인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몰리며 인포바인(51.45%)과 매커스(44.38%), SNT다이내믹스(32.66%), 한샘(29.46%) 등이 최근 두 달 14.41~64.55% 올랐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원래도 자사주 비율이 높아 투자자 사이에 알음알음 소문난 종목들이 지난 4월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며 “일부는 적은 거래량으로 조정을 겪겠지만,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어온 곳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 “경영에 악영향” 긴장
다만 자사주 매각 제도화가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와 임직원 보상, 인수합병 자금 마련, 주가 안정화 등 다양한 목적에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자사주 비중이 높을수록 소각과 함께 경영권 분쟁에 시달릴 수 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인수한 한샘이 대표적이다. IMM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한샘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주식의 29% 수준인 한샘 자사주가 소각되면 SPC의 지분율이 오를 수 있지만,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사라지면서 외부 세력의 경영권 위협에 취약해질 수 있다.
일부 기업이 벌써부터 자금을 동원해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선 이유다. 통신 소프트웨어(SW) 업체 텔코웨어(44.11%)가 대표적이다. 텔코웨어는 이달 10일까지 전체 발행 주식의 25.24%를 공개매수한다. 매수 가격은 주당 1만3000원이다. 매수 공시 전 거래일인 지난달 16일 주가는 9810원에 불과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재무 여력이 있는 기업은 자사주 용처와 상장 실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런 흐름마저 투자 기회로 여기는 곳이 많다. 공개매수 가격이 투자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윤현종 서울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자사주를 소각 없이 늘리면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리스크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투자자들도 학습했다”며 “주주환원에 시장 기대가 커진 만큼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확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최다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