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부터 주말마다 투잡 뛰듯 소개팅을 100번 이상 나갔다. 인연을 찾는 건 이력서를 내는 것과 같다. 많이 넣을수록 합격 확률이 높아진다."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A씨는 리멤버 커뮤니티에 이 같은 '소개팅 후기'를 남겼다. 마치 이력서 내듯 여러 소개팅 자리를 다닌 끝에 예비 신랑을 만났다는 내용으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다.
비혼·만혼 기류가 확산한다는 통념과 달리 결혼을 선택하는 직장인은 늘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4만300여건으로 전년 대비 8.1% 늘어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연령별로는 30대 초반 남녀 직장인의 혼인율이 가장 높았다. 이들이 갑자기 낭만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불안한 미래에 각자도생하기보다 파트너와 자산을 합쳐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현실 계산이 결혼 결정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가 20~50대 직장인 1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혼 인식 조사'에서는 남녀 직장인 모두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 '사랑'이 아닌 '상대로부터 얻는 안정감과 자신의 인생 발전'을 1위로 꼽았다. 결혼을 커리어와 삶의 질을 높이는 실리적 결합으로 보는 시각이 그만큼 뚜렷해졌다는 얘기다.
리멤버 관계자는 "결혼은 단순한 관습적 의무가 아니라 이제 인생이라는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전략적 합작 투자에 가까워졌다"며 "요즘 직장인들은 이제 가정도 기업처럼 경영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짚었다.
"자가예요, 전세예요?" 돌직구 던진다
이 같은 인식은 만남의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리멤버 조사에서 미혼 여성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 2위로 '기대에 맞는 상대를 찾지 못해서(28.2%)'라고 답한 것처럼 적합한 파트너를 발굴하는 과정 자체를 전략화하는 추세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의 자가 여부를 묻는 문화도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증여를 일부 받아 아파트를 매매했다는 20대 자취 여성은 리멤버 커뮤니티에 "소개팅에서 만날 때마다 전세냐 자가냐를 묻는다"며 "부모님이 자산 보고 만나려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 전세라고 둘러대라고 조언했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리멤버 관계자는 "자산을 가진 쪽은 '자산을 보고 접근하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활용하고 구직자처럼 상대의 조건을 스크리닝 하는 선행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랑의 크기보다 인생의 발전이 중요하니까"
막상 결혼을 결심해도 가로막는 건 이 역시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미혼 남녀 직장인 모두 결혼을 미루는 공통 이유 1위로 '경제적·심리적 책임감(32.1%)'을 꼽았다. 통장 잔액보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분위기다.
연인의 경제 관념을 둘러싼 고민들이 쏟아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2년 만난 남친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모아둔 돈이 없다.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안 됐을 때의 플랜 B가 없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한다.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리멤버 커뮤니티 글에는 수백 명이 공감 버튼을 눌렀다.
결혼 자금을 모으는 과정이 신뢰를 검증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30대 초반 직장인 B씨는 예비 신랑에게 "월급의 60~70%를 1년간 저축하면 결혼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1년 뒤 신랑이 모아둔 2000만원을 코인 투자로 전액 날리고 150만원만 남았다는 사실을 실토해 깊은 배신감에 휩싸였다.
결혼 상대를 '커리어 효율성'으로 재단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30대 중반 직장인 C씨는 1년간 사귀며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에게 "새 직무에서 인맥 관리를 해야 하는데 너는 내 인맥 관리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말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진급 실패와 이직 준비로 힘들던 시절을 옆에서 응원했던 1년이 얄팍한 계산에 무너진 것이다.
"우리는 동업자인가요, 별도 법인인가요?"
결혼 이후에도 자산을 놓고 주도권 갈등을 벌이는 부부가 많다. 맞벌이 결혼 2년 차라는 30대 직장인 D씨는 아내가 결혼 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아파트의 월세 수익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D씨가 "경제 공동체이니 합치자"고 하자 아내는 "부모님이 물려준 자산이니 근로소득만 합치는 게 맞다"며 거절했다고.
결국 각자 200만원씩 가계비를 분담하기로 합의를 봤지만 D씨는 "아내는 월세로 쇼핑도 하고 친정 용돈도 드리는데 나는 외벌이처럼 빡빡하게 사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증여 자산과 근로소득 사이에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부부 사이에서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리멤버 관계자는 "감정의 결합이기도 한 결혼이 동시에 자산 형성과 리스크 분산을 위한 전략적 결합으로 여겨지는 것이 2026년 직장인들의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선 눈에 띄는 예외도 있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20대 남성만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1위로 '사랑'을 꼽은 것. 아직 자산 형성 압박이 본격화하기 전인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만 결혼이 여전히 감정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씁쓸한 평가가 뒤따른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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