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변했다…빗장 푸니 투자자들로 문전성시

6 days ago 6

[지금 왜 일본]②
글로벌 PEF·VC가 현지에 투자하는 사례 늘고 있어
"저평가 됐다"…M&A 거래건수도 덩달아 상승 중
日 정부 "2030년 누적 FDI 1000조원 달성 목표"

  • 등록 2025-04-10 오전 4:30:00

    수정 2025-04-10 오전 4:30:00

[도쿄=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벤처캐피털(VC) 업계에 일본어만 가능한 증권사, 컨설팅사 출신 직원들이 다수였는데요. 최근 1~2년 사이 영어가 유창한 인재들이 많이 유입됐습니다.”

일본 VC 업계가 점차 글로벌화 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 VC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주요 민간 VC에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 진출한 해외 VC가 현지에 투자하는 금액은 점차 불어나고 있다. 유동성이 말라붙어 정책자금만 바라보는 국내 VC업계와는 분위기가 180도 다른 상황인 것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9일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일본내 사모펀드(PEF)와 VC 투자는 지난해 179억달러(약 26조 4956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127억달러(약 18조 7985억원) 대비 40.8% 증가한 것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 투자의 15.6%나 차지한 수치였다.

같은 시기 인수·합병(M&A) 딜(deal) 거래건수 역시 1045건으로 전년도 978건 대비 증가했다. 지난해 PEF 운용사가 주도한 최대 규모 거래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소프트웨어 개발사 후지소프트 지분 33.57%를 39억달러(약 5조 7728억원)에 인수한 건이다.

올해 일본 투자업계 분위기는 더 좋을 것이란 전망이 높다. 드라이 파우더(미소진 자금)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M&A 시장에 영향을 미칠 지정학적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올해가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일본 투자업계가 활기를 찾은 배경으로 ‘글로벌 자금의 유입’이 꼽힌다. 일본 내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몇 년째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일본무역진흥기구(제트로·JETRO)는 2023년 일본 누적 FDI가 50조 5000억엔(약 507조 5856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하며 “이는 일본 GDP의 약 8.5%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과 대만 투자자들의 유입이 일본 FDI 증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미국 주요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히로시마 공장을 인공지능(AI)용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기지로 삼고자 투자했다. 또한 대만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 2공장을 건설했다. 반도체 프로젝트 외에도 미국과 싱가포르 기업의 데이터 센터 건설 투자가 FDI 유입을 견인했다.

현지에서 만난 전 노무라증권 임원은 “주식 투자에서 외국 자금 유입이 지난해 상당히 증가했는데 일본 주식이 타 국가와 비교해 많이 저평가돼 있고, 환율이 많이 떨어진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이나 IT 관련 기업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으로도 글로벌 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스타트업 정보제공 업체인 스피다가 집계한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해외 VC가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608억엔(약 6235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년 406억엔(약 4163억원) 대비 약 1.5배 늘어난 수치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그동안 보수적인 태도로 현지 사업에만 머물러 있었던 일본 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할 경우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이다. 금리도 낮아 펀드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는 점은 덤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글로벌 투자·운용사들의 이목을 끈 요인이다. 중국에 투자하기 어려워진 글로벌 투자자들이 시선을 돌린 곳이 바로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이다. 일본 IB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설령 투자하더라도 회수할 수 없다는 리스크가 존재해 사실상 아시아에서 중국 투자는 멈춘 상태”라며 “대안으로 저렴한 일본 주식이나 급속도로 성장 중인 이머징마켓이 주목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몰아 일본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누적 FDI를 100조엔(약 1022조 98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일본 정부는 FDI 촉진을 위해 협의회 꾸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세제 개혁을 감행했다. FDI 유치 우선 프로그램은 △일본 투자 기회 확대 △아시아·기타 지역에서 유망 인재 확보 △국내외 기업 간 협업 촉진 △사업·생활 환경 개선이라는 내용을 포함한다. 또한 전기 자동차,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의 현지 생산을 촉진하고자 지난해 세제를 개편했다. 혁신박스 세금 제도도 함께 내놨다.

현지 VC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VC들은 모태펀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은데 일본도 똑같이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SMRJ)라는 중소기업 지원정책과 사업을 내놓는 기관이 출자자(LP)가 돼 자금을 출자하긴 한다”면서도 “일본 전역에 100여 개가 넘는 은행과 수백개에 달하는 금융기관이 분포해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늘어난 대기업 산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등 LP가 다양해 한국보다 자금 조달 창구가 다양한 편”이라고 전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