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도뮤지엄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모나 하툼·제니 홀저 등 13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는 전시가 제주도 산방산 인근 SK 포도뮤지엄에서 열린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이자 포도뮤지엄 총괄디렉터가 기획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전시다. 인생의 온갖 고난과 불안에 대해 조금 더 거리를 둔다면, 혹은 우주적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조금 더 견디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접근법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 13명의 작품 20여 점은 현실의 불안과 폭력, 상처를 신선한 방식으로 고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모나 하툼의 'Remains to be Seen'은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콘크리트 덩어리 180개와 철근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평온해 보이면서도 위태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출신으로 신분이 불안했던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다. 제니 홀저의 'Cursed'는 바닥과 긴 벽을 따라 296개의 낡은 금속판이 흩어져 있다. 고대의 저주판 형식으로 분노와 조롱이 넘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설미디어 문구를 박제화해 폭력적인 정치 언어를 까발린다.
뉴욕 출신인 라이자 루의 구조물 'Security Fence'도 아름다운 감옥이라는 모순과 이중성을 드러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여성들을 감금했던 철조망을 수십만 개의 비즈로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은 줄루족 여성 20명과 함께 1년간 집단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전시는 동시대 가장 핫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파편화한 풍경을 연출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듯 시계의 이미지도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이완의 작품은 자본주의 시대 부와 직업에 따라 속도가 다른 세계인들의 일상을 품는다.
2층 제3전시실은 한·중·일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또 다른 결을 자아낸다. 김한영의 회화는 멀리서는 잔잔한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붓끝으로 찍어낸 물감이 작은 뿔처럼 수없이 솟아 있다. 긁히고 상처 난 존재들의 모습이다. 일본 작가 쇼 시부야의 풍경 연작도 뉴욕 루프탑으로 쏟아지는 평화로운 햇볕을 초월적인 시선으로 뉴욕타임스 1면에 채색했지만, 그 이면을 들추면 한국의 계엄사태나 총격 사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실제 인간사의 소란을 엿볼 수 있다.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상처와 치유다. 결국 답은 야외 정원에 설치된 로버트 몽고메리의 '사랑은 혁명적 에너지'라는 작품이 말하듯 사랑일수도, 아니면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주적 시각'일 수도 있다.
김 디렉터는 지난 8일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삶의 문제에 대해 분자와 분모가 있다면 분모를 키우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분모와 분자의 차이가 클수록 내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는 내년 8월 8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1만원.
[서귀포 이향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