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무덤에서 ‘삼바’ 신화로…아디다스가 승리한 방식[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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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북중미 월드컵의 우승팀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저력을 확인시켜준 강팀이라면 여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아디다스. 전통의 라이벌 나이키보다 더 많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확보하며 경기장 점유율에서 앞서나갔죠.

최근 실적을 따져보면 나이키의 침몰과 대비되는 아디다스의 부활이 더 돋보이는데요. 불과 3년 전만 해도 적자 늪에 빠져 위태로웠던 아디다스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디다스 부활을 이끈 비외른 굴덴(Bjørn Gulden) CEO의 리더십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위기를 딛고 아디다스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디다스 제공

위기를 딛고 아디다스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디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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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6만명에 전화번호 준 CEO

베스트셀러 이지(Yeezy) 시리즈가 래퍼 칸예 웨스트(예)의 혐오 발언으로 인해 갑자기 12억 유로(약 2조원)짜리 악성 재고로 돌변했습니다. 실적은 고꾸라졌고 주가는 폭락했고 CEO까지 교체됐죠. 사태 수습을 위해 경쟁사 푸마의 CEO였던 비외른 굴덴을 영입한 2023년 초, 아디다스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굴덴 CEO가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첫번째 타운홀 미팅에서 꺼내든 무기는 솔직함. 그는 민감한 재무 데이터는 물론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전체 직원 6만명한테 공개해버렸죠. “직원들은 리더십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편안하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어야죠. 저는 매주 수백 건의 문자 메시지와 왓츠앱 메시지를 받아요.”

노르웨이인인 비외른 굴덴 CEO는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전직 프로축구 선수이다.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한 뒤, 1990년대 아디다스에서 부사장으로 일했다. 이후 판도라와 푸마 CEO를 지내며 탁월한 실적 개선 능력을 인정받았고, 2023년 1월 아디다스 CEO를 맡았다. 아디다스 그룹 제공

노르웨이인인 비외른 굴덴 CEO는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전직 프로축구 선수이다.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한 뒤, 1990년대 아디다스에서 부사장으로 일했다. 이후 판도라와 푸마 CEO를 지내며 탁월한 실적 개선 능력을 인정받았고, 2023년 1월 아디다스 CEO를 맡았다. 아디다스 그룹 제공
굴덴 CEO는 아디다스 위기가 제품이 아니라 조직의 속도에 있다는 걸 꿰뚫어 봤어요. 의사결정이 너무 복잡하고 오래 걸리다 보니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거죠. 게다가 “일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문화”까지 조직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요. 전직 프로축구 선수인 그는 마치 드리블하듯 이를 돌파해 나갑니다.2022년, 패션업계에선 레트로 열풍을 타고 밑창이 얇고 납작한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 유행이 서서히 돌아올 조짐이었고요. 특히 블랙핑크 제니가 신었던 아디다스 ‘삼바’는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디다스는 삼바, 가젤 같은 클래식 스니커즈 생산량을 2024년에나 늘리겠다는 느슨한 계획을 세워뒀는데요. 2023년 초 회의에서 굴덴 CEO는 이렇게 묻습니다. “왜 기다려?” 그리고 계획을 1년 앞당기라고 했죠.

아디다스 삼바 열풍을 일으켰던 블랙핑크 제니.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아디다스 삼바 열풍을 일으켰던 블랙핑크 제니.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직원들이 수많은 이유(생산능력 부족, 가죽 수급의 어려움 등)를 들며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업계 베테랑인 그는 “필요하다면 가죽을 직접 조달해 오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죠. 그렇게 아디다스는 2023년 클래식 스니커즈 ‘삼바’와 ‘가젤’ 생산량을 계획의 10배로 늘렸고요. 결과는 대성공.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신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삼바 열풍’이 불었죠. 단숨에 ‘이지’ 시리즈의 실패를 만회할 새로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어요. 그저 조직에 속도감을 불어넣었을 뿐인데, 아디다스의 잠자고 있던 유산이 깨어난 거죠.

‘중티다스’가 이룬 반전

“이 업계엔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합니다. 수직적 계층 구조 없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죠. 하나의 보고라인과 명확히 정의된 규칙에 의존하는 건 이 업계, 소비재 산업과 맞지 않아요.” (2023년 9월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국 인터뷰)

160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은 어떻게 해야 경영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노르웨이인인 굴덴 CEO는 독일 본사가 결정권을 틀어쥐는 중앙집중화된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조직을 매트릭스(Matrix)식으로 뜯어고쳤어요. 이 과정에서 여러 고위 임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죠. 이제 굴덴 CEO는 영업 및 브랜딩 총괄까지 겸임합니다.

이를 두고 초기엔 “1980년대 경영 스타일”이란 비판이 나왔는데요. 부서장이 중간 계층 없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의사결정은 한층 빨라졌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독일 이외 사업장의 경영 자율성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거죠.

아디다스가 중국 한정판으로 출시해 전 세계 SNS에서 화제가 됐던 ‘탕 재킷’. 아디다스 제공

아디다스가 중국 한정판으로 출시해 전 세계 SNS에서 화제가 됐던 ‘탕 재킷’. 아디다스 제공
아디다스가 중국에서 춘절 기념으로 출시했던 ‘탕(唐) 재킷’이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전통 단추 모양과 현대적 스트리트웨어를 결합한 디자인으로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요. 한국에서도 ‘중티다스’라며 화제가 됐죠.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는 건 제품 개발의 실질적 권한을 중국 현지 팀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100명 넘는 전문 인력이 상주하는 상하이 크리에이티브 센터가 중국 판매 제품 중 약 65%의 디자인을 담당하죠. 중국 사무소가 보고해야 할 독일 본사 측 임원은 CEO 한명 뿐입니다. 중국은 유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시장이기 때문에 “현지 직원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도구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굴덴 CEO의 설명이죠.

이런 현지화 전략은 아디다스 반전의 열쇠가 됐습니다. 중국의 ‘애국 소비’ 열풍으로 2022년 감소세를 보였던 아디다스의 중국 매출은 2023년부터 반등에 성공했고요. 이젠 중국이 아디다스 부활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올랐죠. 올해 1분기에도 아디다스 중화권 매출은 17%나 증가했는데요(환율 영향 제거 기준).

경쟁사 나이키와 가장 대조적인 부분이죠. 나이키는 중국 시장에서 매출 부진이 이어지자 할인을 남발하며 재고 밀어내기에 급급했고요. 그 결과 프리미엄 이미지마저 잃어가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나이키의 최근 3개월 중화권 매출은 전년보다 17%나 급감하면서, 중국이 갈길 바쁜 나이키의 발목을 잡는 늪이 되어버렸죠.

스포츠 명가의 헤게모니 복원

사실 2020년대 초,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비슷한 실책을 범했습니다. 잘 팔리는 일상용 스니커즈(아디다스는 이지, 나이키는 덩크) 판매에 집중하느라, 러닝화 분야에선 혁신이 멈췄던 거죠. 특히 아디다스는 2010년대 후반 울트라부스트(UltraBoost)의 폭발적인 성공에 안주하다가 엘리트 러닝화 시장의 주도권을 경쟁사들에 빼앗기고 말았는데요.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러닝 붐은 빠르게 커져 갔고요. 이 틈을 타 호카나 온러닝 같은 신생 경쟁사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죠.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굴덴 CEO는 다시 아디다스의 우선순위를 ‘스포츠’로 돌려놨습니다. 스포츠라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요. 그 스포츠 중에서도 핵심은 러닝과 축구였죠.

2026 런던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1시간 59분 30초에 완주하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사바스티안 사웨. AP 뉴시스

2026 런던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1시간 59분 30초에 완주하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사바스티안 사웨. AP 뉴시스
이 전략은 적중했고요. 아디다스의 퍼포먼스 부문(러닝, 축구, 트레이닝 등)은 1분기 매출이 29% 급증하며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올해 4월엔 런던 마라톤에서 아디다스 러닝화를 신은 선수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식 대회 ‘마의 2시간 벽’을 깨는 신기록을 세워 모두를 놀라게 했죠. 무게가 100g이 채 되지 않는 판매가격 500달러짜리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3’인데요. 굴덴 CEO는 컨퍼런스 콜에서 이에 대해 “매우 의미가 큰 성과”이고 “수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라고 강조했어요. “이 신발은 수천 켤레가 팔릴 거라고 예상했던 제품은 아니지만, 실제 수요는 수천 켤레에 달합니다.“

축구에 진심인 굴덴 CEO는 취임 후 직접 축구 명문구단과의 파트너십을 챙겼는데요. 애스턴 빌라, 셀틱, 뉴캐슬,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호날두가 소속된 사우디아라비아 알나스르 등이 새롭게 아디다스와 손을 잡았고요. 2025년엔 나이키의 가장 큰 축구 고객이던 리버풀FC까지 탈환했죠.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아디다스는 나이키(12개 팀)보다 많은 14개 국가 대표팀 유니폼에 로고를 새겼는데요. 2022년 월드컵(아디다스 7개, 나이키 13개팀) 때와 비교하면 축구 명가 아디다스의 부활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아디다스의 1분기 지역별 실적을 보여주는 그래픽.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모두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거뒀다. 굴덴 CEO는 “한국은 신발과 의류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아디다스 제공

아디다스의 1분기 지역별 실적을 보여주는 그래픽.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모두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거뒀다. 굴덴 CEO는 “한국은 신발과 의류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아디다스 제공
아디다스는 이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할인 없는 정가 판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매출총이익률(총매출액에서 매출 원가를 빼고 남은 이익의 비율)은 역대 최고 수준(51.6%, 2025년 연간 기준)을 기록했죠.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굴덴 CEO는 “아디다스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상황에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요.

물론 트렌드란 늘 변화하기 마련이고, 후발주자들의 추격은 만만찮습니다. 지금 잘나간다고 해서 앞날이 탄탄대로라는 보장은 없죠. 하지만 아디다스는 이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준비가 되었고요. 그 민첩함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겁니다. 그게 바로 아직까지 헤매고 있는 나이키와는 다른 점이죠.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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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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