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먹거리 물가 부담 문제를 정조준함에 따라 정부에서도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선다.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 안정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국정 공백을 틈타 가격을 줄줄이 올렸던 가공식품에 대한 대책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이었던 수입 원재료 가격 부담 완화를 명분으로 정부가 식품가격 동결 및 인하 압력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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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가공식품 중심으로 먹거리 물가 크게 올라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먹거리 물가 안정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현황 및 가격 상승 원인을 파악한 뒤 물가 안정 방안을 마련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오전 비상경제점검TF 2차 회의에서 물가 대응책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이 대통령은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들한테 너무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현황과 혹여 가능한 대책이 뭐가 있을지 챙겨서 다음 회의 이전에라도 보고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라면을 콕 짚어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라고 묻기도 했다.
같은 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물가 관리를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당정 협의를 통해 국민이 민생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최근 소비자물가는 1%대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먹거리 물가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각각 4.1% 급등했다. 연초부터 국정 공백을 틈타 식품기업들이 잇달아 가격을 인상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가공식품 74개 품목 가운데 계엄 사태 직전인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물가지수가 상승한 품목은 53개로,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이 중 6개월간 가격이 5% 이상 오른 품목도 19개에 이르며 △초콜릿 10.4% △커피 8.2% △빵 6.3% △베이컨 6% △아이스크림 5.2% △라면 4.7% 등이 두드러졌다.
환율·국제 식량가격 안정세…정부, 가격 인하 압박 전망도
이같이 가공식품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정부가 식품과 유통업계를 대상으로 가격 동결 및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정부는 물가 상승기에 농식품부 장·차관 주재로 식품업계 간담회를 개최해 가격 안정을 압박해왔다. 올해도 잇단 가격 상승에 3차례 넘게 식품기업을 만나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최근 환율이 안정세로 접어들고 수입 원재료 부담도 완화되는 추세로, 정부의 가격 인하 요구에 대한 명분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전월보다 0.8% 하락하며, 3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가공식품에 주로 이용되는 밀가루 수입 가격은 1t(톤)당 295달러로, 5년 치 평균인 평년가격(346달러)보다 14.7%나 떨어진 상황이다. 또 연초 14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환율도 최근에는 1300원대로 크게 낮아졌다.
또 정부에서는 수입 원재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 설탕, 커피 생두, 코코아 가공품 등 21개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수입부가가치세 면제 등 세제와 금융지원 등도 병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함께 가격 담합 의혹 조사에 나서며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4월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식품회사 5곳을 대상으로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식품 기업들이 사전 협의를 통해 가격을 동반 인상했는지 등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가격 정책보다는 시장 여건 개선 등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은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기적 조치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물류비 지원 등을 통한 기업 비용 구조 완화 및 공정한 유통 구조 조정을 통해 마진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격에 초점을 둔 직접적 관리보다는, 노동·규제·세제 등의 부담을 낮춰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