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국배 이수빈 기자] 금융당국이 이재명 정부 출범 2주 만에 장기 연체자, 저소득 자영업자 등의 빚을 대거 감면해주기로 했다. 빚의 늪에 빠진 취약 계층을 돕고, 오는 9월 만기가 돌아오는 50조원의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코로나 대출에 선제로 대응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기조에 발맞춰 빠르게 정책을 내놨다. 다만 역대 정부마다 빚을 탕감해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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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8일 서울 명동 거리. (사진=연합뉴스) |
1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책은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 신설되는 ‘장기 연체채권 일괄매입형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개인사업자 포함)이 매입 대상이다. 개인신용 관련 제도에서 장기간으로 상정하는 7년을 연체 기준으로 설정했다. 5000만원은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신청자 평균 채무액(4456만원) 등을 고려해 정한 금액이다. 이 기준을 설정했을 때 7년 이상 연체자의 95%가 매입 대상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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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개요 |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해 만드는 채무조정 기구가 채무자의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 소각 또는 채무 조정을 결정한다. 상환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면 채무 소각, 상환 능력이 부족한 경우 대출 원금의 최대 80%까지 감면해준다. 최대 70%를 감면해주는 기존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보다 강화된 것이다. 매입 채권 규모는 16조4000억원으로 약 113만4000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추정된다.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도덕적 해이 논란도 있겠지만 빌려준 금융기관들은 이미 다 상각 처리했을 것”이라며 “비용 대비 편익이 나쁘지 않은 정책”이라고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 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 대상에 저소득 소상공인을 포함하는 방안도 시행된다. 만기 연장보다 과감한 채무 조정이 상환 능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의 실질적 재기에 도움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총 채무 1억원 이하, 중위소득 60% 이하인 연체 차주를 대상으로 원금의 90%를 감면하며 최대 20년 분할상환을 지원한다. 현재는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의 60~80%를 감면해주며 분할 상환 기간도 최대 10년이다. 10만1000명(채무 6조2000억원) 정도가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늘어난 채무에 대해 재정이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고, 최근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된 점도 고려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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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빚 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돈을 안 갚는 사람이 (성실차주보다) 반드시 더 약자라는 보장은 없다”며 “오히려 기존에 잘 갚아온 사람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인센티브를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성실히 갚은 사람도 ‘굳이 먼저 갚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누구나 장기 연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통합과 약자에 대한 재기 지원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며 “추심·압류 등 연체의 고통을 고려하면 고의 연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과 관련해서도 “매입한 채권은 철저한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 개인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 능력을 상실했다면 소각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장기 연체채권 매입에 약 8000억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16조4000억원의 연체채권 규모에 평균 매입가율(5%)을 곱해 산출한 값이다. 이중 4000억원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금융권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나머지 4000억원을 금융권이 부담하기로 확정된 건 아니다”며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맞고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다”고 했다. 새출발기금 확대에는 2차 추경 예산 7000억원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