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항공사의 같은 기종에서 유사 사례가 두 번이나 발생하자 보잉은 급히 이 기종을 운영하는 항공사에 긴급 조치 매뉴얼을 작성해 배포했다. 그런데 이 매뉴얼을 확인한 사우스웨스트항공 조종사들은 “교육받지 않은 시스템이 항공기에 설치돼 있었다”며 보잉 측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보잉이 기존 737기종에는 없던 안전 장비를 새로 설치해 놓고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항의였다.
해당 장치는 ‘부하 감소 장치(LRD)’다.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팬 블레이드나 내부 장치 일부가 깨진다. 그러면 고속으로 회전하는 엔진의 균형이 무너져 매우 심한 진동이 발생한다. 심하면 부품이 떨어져 2차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737-8 엔진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회전축과 팬 블레이드가 분리되도록 하는 장치가 달렸다. 이것이 LRD다.
보잉은 항공사와 조종사들에게 “LRD는 완전 자동으로 작동하는 장치로 조종사가 추가로 조치해야 할 절차가 없어서 설명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조사한 결과 사고 직후 객실에 유입된 연기가 LRD와 연관이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LRD가 작동하는 순간 엔진에 기름을 공급하는 관을 강하게 때리면서 이 관이 파손됐고, 새어 나온 기름이 객실로 공기를 공급하는 또 다른 관으로 흘러들어 뿌연 연기 형태로 객실에 유입됐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LRD가 작동할 때 조종사들이 객실 공기 유입관을 차단해 기름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실제 사고기 조종사들은 연기가 객실에 유입되자 엔진 소화기 시스템을 가동했는데, 그 직후 연기가 걷혔다고 조사 당국에 증언했다. 엔진 소화기 시스템을 가동하면 유독가스가 객실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동으로 공기 유입관 밸브가 잠기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객실 연기가 엔진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같이 조치했지만, 조사 결과 사고기의 엔진에서는 화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행 중인 여객기는 객실에서 불이 났을 때, 엔진에서 불이 났을 때, 불이 나지 않았을 때의 비상 대처 방식이 각각 다르다. 만약 상황별 대처를 잘못하면 항공기가 더 위험해지거나 승객이 다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NTSB에서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보잉과 엔진 제조사는 LRD 시스템과 여기에서 발견된 결함을 항공사나 조종사에게 즉시 고지하라”고 긴급 명령을 내렸다. 엔진 제조사에는 시스템 개선을 함께 명령했다. “조종사가 조치할 것이 없어서 알리지 않았다”는 보잉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비행기에 장착된 시스템 중 허투루 달린 건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조종사와 항공사는 원리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이원주 산업1부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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