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 선포문을 사후에 작성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서명을 받았다고 내란 특검에 진술했다고 한다. 계엄 당일 밤 국무위원들에게 배부된 선포문에는 서명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었는데 이틀 뒤 서명란을 추가한 문건을 새로 만들어 마치 계엄 선포 전 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한 전 총리가 사후 문건을 만든 게 알려지면 논란이 될 수 있으니 강 전 실장에게 없던 일로 하자고 해 급조한 선포문은 결국 폐기됐다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등에서 보안이 요구되는 사안은 사후 결재도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계엄 선포문을 뒤늦게 만든 걸 보면 윤 전 대통령 측도 서명이 빠진 선포문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할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는 건 물론이고, 문서를 갖춰 총리와 담당 장관의 서명을 받도록 한 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헌법적 통제 장치다. 사후에 요식행위로 메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직전 국무위원들을 불러서 했던 회의는 절차적 하자의 연속이었다. 안건 상정도, 회의록 작성도, 국무위원들 서명도 없었다. 회의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였다. 한 전 총리는 “형식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했고, 다른 장관들은 “국무회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재 역시 국무회의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심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아 계엄 선포 절차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계엄 직전 대통령실 회의는 실체가 규명돼야 할 사안도 많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받았다는 ‘국가 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쪽지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봤다는 언론사 단전 단수 지시 쪽지는 국회와 언론을 무력화하려는 윤 전 대통령의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지만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한 전 총리와 최 전 부총리, 이 전 장관은 기존 진술과 달리 계엄에 동조했거나 묵인한 것으로 의심되는 행적이 발견돼 출국이 금지된 상황이다. 국가적 위기를 앞에 두고 국무회의가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그날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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