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부 ‘코스피 5,000’ 기대감에 증시 급등
‘1차 동학개미 운동’ 때처럼 유동성도 증가
증시 상황과 반대로 가는 기업 실적·성장률
미래투자 발목 잡는 ‘상법’이 정말 주가 올릴까
지금 한국 증시를 둘러싼 환경은 1차 동학개미 운동 때와 닮아가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자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대폭 내리고, 각국 정부는 돈 풀기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가 4·15 총선을 앞두고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씩 재난지원금을 나눠준 것도 그때다. 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연일 압박받고 있다. 금리 인하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은행도 서울 등 수도권 집값만 안정되면 금리를 내릴 태세다. 한국 새 정부의 첫 경제 정책은 전 국민에게 15만∼52만 원씩 소비쿠폰을 나눠주는 30조5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이다. 유동성이 불어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5년 전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021년 2월 한국 증시에서 일어난 동학개미 운동을 소개하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문 정부 때 폭등한 아파트 값을 지목했다. ‘월급 모아선 집을 살 수 없다’며 좌절한 한국 청년들이 영혼을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값 상승폭은 6년 9개월 만에 최고였다. ‘6·27 대출 규제’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상한이 6억 원으로 묶인 만큼 유동성이 증시로 더 쏠릴 가능성이 커졌다.
5년 전과 큰 차이점은 기업이 처한 현실이다. 팬데믹으로 위기가 닥칠 거란 예상과 달리 당시 한국 수출 대기업들은 글로벌 특수를 맞았다. 지원금을 받았지만, 집 밖에 못 나가는 선진국 소비자들은 한국산 TV 등 가전제품을 사들였다. 사람을 피해 자연을 찾는 캠핑족에게 한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불티나게 팔렸다. 2020년 ―0.7%로 떨어진 한국의 성장률이 2021년 4.6%, 2022년 2.7%로 반등한 이유다.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그새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영향권에 든 한국산 자동차, 가전, 철강은 수출이 급감하는 중이다. 관세를 피해 살아남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 투자해 공장까지 세워야 한다. 한때 글로벌 선두에 섰던 한국의 2차전지 업체들은 중국에 시장을 대거 뺏겼고,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까지 겹쳐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다. 새 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 기치를 내걸고 100조 원을 투자한다지만, 수년 내에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출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0%대로 떨어졌고, 내년에도 2% 성장이 어려워 보인다.
주가는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을 반영해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닥치거나 글로벌 무역질서가 재편되는 것 같은 이례적 상황에선 현실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기도 한다. 5년 전 실물경제와 괴리돼 폭등하는 미국 증시를 보면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투자자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둘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셋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내수가 침체된 지금 한국의 증시 호황은 소비를 끌어올리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 부동산에 지나치게 쏠린 유동성을 증시로 분산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생명력은 쇠락하는데, 주가만 계속 상승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래 가치를 높일 투자, 인수합병(M&A)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기업들이 반대하는 ‘상법 개정’을 정부와 여당은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이사회에 진출한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 대신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다면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배임 소송이 겁나 경영진이 투자를 주저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를 멈추는 기업들로 가득 찬 증시가 언제까지 오를 수 있겠나. 지금 정부 여당은 ‘주가가 경제’란 믿음에 사로잡혀 눈앞의 주가 상승을 경제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여러 얼굴 중 하나일 뿐, 경제 그 자체가 아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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