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런 생각, 해보셨어요? 사람고기에 환장을 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좀비들이 유독 동료 좀비는 먹지 않는단 사실! 왜냐? 가공할 식욕을 보유한 좀비가 동족 포식을 하는 순간, 그들의 숫자는 줄고 줄어 멸종에 이를 테니까요. 동족을 잡숫지 않는 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좀비들의 선택이었던 거죠. 성욕이 없는 좀비는 자손을 낳지 못하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좀비가 깨문 사람이 좀비로 변한다는 ‘신박한’ 설정을 통해 식욕 해소와 번식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도록 한 일타쌍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지요.
[2] 식욕과 성욕.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보장되고 관리돼야 할 딱 두 가지 당면 과제예요. 둘 중 하나라도 균형이 깨지면 질서는 와해되고 갈등과 전쟁이 촉발되지요.
2일 국내 개봉해 6일까지 913명이 관람한 기기묘묘한 미국 독립영화 ‘사스콰치 선셋’은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성욕 관리란 사실을 일깨워줘요. 사스콰치란 이른바 ‘빅풋’이라 불리는 직립보행의 털북숭이 유인원(그 유명한 ‘바야바’의 모델입니다). 암컷 한 마리와 수컷 세 마리로 이뤄진 사스콰치 가족을 다룬 이 88분짜리 영화는 일종의 무성영화예요. 대사 하나 없이 “꾸웅꾸웅” “우어엉” “호호호힝” 같은 괴성만 나오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장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1991년)를 떠올리시면 곤란해요. 8만 년 전, 원시 인류의 생활을 소재로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자 상징인 불과 인간다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불을 찾아서’와 달리, ‘사스콰치 선셋’은 뇌가 없어도 볼 수 있는 ‘병맛’ 코미디물이니까요. 근데 이 영화에 숨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깜찍한 통찰력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니까요?북미 산속 깊은 곳. 늙은 수컷, 젊은 수컷, 암컷, 새끼 수컷 등 네 마리로 구성된 사스콰치 무리가 살아요. 경험 많은 늙은 수컷은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기미상궁처럼 숲속 열매나 버섯을 먼저 맛본 뒤 문제가 없으면 다른 사스콰치들에게 식사를 권유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속은 욕구 불만으로 핵폭발 직전. 암컷이 잘생기고 철없는 젊은 수컷과만 교미하고 자신에겐 엉덩이를 내어주지 않으니까요(‘빅풋’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간 이상으로 분명합니다). 급기야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한 늙은 수컷은 사고를 칩니다. 무리를 뛰쳐나와 미친 듯이 숲속을 내달리던 그는 빨간 독버섯을 홧김에 뜯어 먹곤 환각에 빠지죠.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나 자신을 먹잇감으로 노려보는 맹수. 바로 이때, 미친 수준으로 참신한 장면이 벌어져요. 성욕에 불탄 늙은 수컷이 취한 눈빛으로 맹수에게 다가가요. 교미하려고요!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맹수의 풀코스 저녁 식사가 되죠.
이 괴작은 인간 집단의 질서가 유지되는 본질적 요소를 거울처럼 비추는 메타 영화 같기도 해요. 영화는 알려줘요. 수컷들이 제명을 못 사는 이유는 그놈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이고, 성욕이 관리되지 못하면 공동체는 균열을 일으킨다고 말이죠.
[3] 인간의 동물본능을 평생에 걸쳐 탐구한 일본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논란적인 그의 작품 ‘나라야마 부시코’에는 두메산골 폐쇄된 마을을 이끄는 지혜로운 69세 할머니 ‘오린’이 등장해요. 할머니의 고민은 둘. 하나는 70세가 되면 장남에게 업힌 채 산속으로 들어가 고려장에 처해지는 마을의 오랜 풍습을 곧 따라야 하는 나이임에도 자신이 저주스러울 만큼 건강하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남만 혼인한다는 관례에 따라 결혼도 못 하고 이웃집 암컷 백구나 탐하는 무지렁이 둘째 아들의 달아오른 성욕이 불쌍할 만큼 비등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죠. 급기야 오린은 솔루션을 냅니다. 자신의 튼튼한 치아를 절구 모서리에 부딪쳐 몽땅 깨뜨려버림으로써 식음을 스스로 전폐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죽을 채비를 하는 한편, 과부인 이웃 동료 할머니에게 차남의 사정을 절절하게 설명하지요. 차남이 시체처럼 누운 노파 위에 올라 밤새 성교하는 동안, 장남의 등에 업힌 채 눈 덮인 나라야마(山·산)로 들어가는 오린 할머니의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노인은 사라지고 청년은 욕망한다.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요.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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