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에 김장하까지…장미대선 앞두고 다큐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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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김장하까지…장미대선 앞두고 다큐 열풍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 정국이 현실화된 가운데, 스크린에서도 '정치의 바람'이 분다.

정치 다큐멘터리는 대중의 정치 감수성을 자극하며 양 진영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장르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상업영화보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시의성을 살려 단기간 내 개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효율' 콘텐츠로 여겨진다.

4개월간의 탄핵 정국으로 불안정한 분위기가 이어진 가운데 극장가는 관객을 불러들이지 못했다. 이 가운데 정치 다큐멘터리가 극장가에 예상치 못한 기폭제가 될지 관심이다.

◆ 엔딩 크레딧 올라가자 '만세'

오는 4월 16일 개봉 예정인 '하보우만의 약속'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목은 애국가 가사 중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에서 따왔고, 두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다.

하보우만 제작위원회는 이 영화에 대해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가 이끈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조명한 애국 다큐멘터리다"라고 소개했다.

이 영화는 최근 시사회를 열고 보수 단체와 교회 등 관계자들을 초대했다. 영화 상영 중 간간이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에 '만세' 소리도 들렸다.

이승만에 김장하까지…장미대선 앞두고 다큐 열풍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80세 노감독 이장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두 지도자의 역사를 다루게 됐다"며 "분열과 대립이 심하던 해방 정국의 역사가 지금 시대에도 이어지는 것 같다. 이 혼란도 잘 정리돼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고 다큐멘터리 제작 의도를 밝혔다.

자료 감독 김일주는 "다큐멘터리는 사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며,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영화 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위해 두 지도자를 보내 기적을 만들었다"며 "현재 우리 정치의 혼란상 때문에 낙망하고 계신 국민께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담은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도 내달 시사회를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로 시작된 일련의 흐름을 긴 호흡으로 따라간다. 7년간 이어진 시위의 현장과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특정 진영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조명하는 다큐로 기능한다.

◆ 탄핵 선고 계기로 다시 회자 된 '어른 김장하'

이승만에 김장하까지…장미대선 앞두고 다큐 열풍

정치적 격변 속에서 다시 주목받은 다큐도 있다. 바로 MBC경남의 다큐멘터리를 영화화한 '어른 김장하'다. 이 영화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60년간 이웃들을 위해 선행을 이어온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김장하 장학생'으로서 발언한 장면이 회자되며 관심을 받았다. 김 선생은 생전에 사법시험 합격자 문형배에게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 갚고 싶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조언했다.

이 장면이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며 관객의 심금을 울렸고, 개봉 1년 5개월 만에 재개봉이라는 보기 드문 사례로 이어졌다.

김 선생은 1983년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91년 국가에 헌납했고 대한민국 최초의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을 알리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으며 지역 문화와 언론, 환경, 여성운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자신의 선행을 알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2022년 5월 31일 남성당한약방 문을 닫고 은퇴해 평범한 할아버지로 지내고 있다.

'어른 김장하'는 바쁘고 각박해진 사회에 지친 관객들에게 한결같이 선하고 이타적인 언행을 이어온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통해 치유와 감동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CGV에서 4월 개봉을 시작해 전국의 독립영화관에도 확대 상영할 계획이다.

◆ '건국전쟁' 흥행 바통 잇는 작품 나올까

이승만에 김장하까지…장미대선 앞두고 다큐 열풍

정치 다큐멘터리가 대선이나 총선 시기에 맞춰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격동기에는 국민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진영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콘텐츠 수단이 필요해진다. 영상은 그 자체로 선동적일 수도, 감동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제작비가 비교적 적게 들고, 현실의 사건을 바탕으로 빠르게 기획할 수 있어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콘텐츠로 꼽힌다. 상업영화에 비해 제작 리스크는 낮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시의성에만 의존할 경우, 관객의 관심이 빠르게 식을 수 있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힘내라 대한민국'은 개봉 당시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으나, 윤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이후 극장가에서 빠르게 내려갔다. 누적 관객 수는 7만여명에 그쳤다.

완성도와 작품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가수 김흥국이 제작한 박정희 전 대통령 다큐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화제성은 있었으나 내용의 깊이와 연출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현재도 스크린에 걸려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다큐 영화 '준스톤 이어원'은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로부터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허 전 대표는 빈 객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사람이 너무 없어서 영화 시작 전 여유롭게 인증샷을 남기긴 했는데, 영화 마치고는 돈 주고 시내까지 나온 것을 후회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6일 개봉한 이 작품의 누적 관객 수는 3987명이다.

지난해 2월 개봉한 '건국전쟁'은 정치인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1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던 시점에, 보수 진영 관객층의 강한 호응을 끌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건국전쟁'의 바통을 이어받을 정치 다큐멘터리가 등장할지 영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관객들은 '진짜 이야기'에 강한 몰입감을 느낀다. 관객의 정치 감수성도 예전보다 높아졌기에 수요는 계속 유지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진영을 떠나 다양한 정치인을 조명하는 흐름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특정 시각에만 치우치지 않고 정치인의 공과를 균형 있게 그려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대중적 공감을 얻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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