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미국 애리조나대 졸업식에 축하 연사로 나선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예상 밖의 반응과 마주했다. “여러분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인공지능(AI)은 업무 방식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발언에 학생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슈밋이 AI를 언급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우~”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여러분의 두려움을 이해한다”며 달랬지만, AI 시대를 살아가야 할 20대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의 야유에는 한 세대의 실존적 공포가 담겨 있다. AI가 위협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만이 아니다. 청년이 사회에 진입해 중산층으로 올라서던 계층 이동 사다리 그 자체다. 과거의 기술 혁명이 블루칼라를 대체했다면, 이번 AI 물결은 화이트칼라 사무직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 맨 앞줄에 사회 진입을 앞둔 청년들이 서 있다.
흥미롭게도 20대는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는 세대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주간 AI 활용률은 72%로 가장 높지만, “내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응답 역시 44%로 1위였다. 반면 30·40세대는 AI를 핵심 업무의 생산성 향상에 활용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AI가 숙련자의 생산성은 더 증폭시키고, 정작 경험을 쌓아야 할 청년들의 일자리는 증발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는 것이다.
20대의 불안은 노동시장에서 이미 차가운 현실이 됐다. 메타는 인력의 10%를 감원하며 신규 채용을 축소했고, 아마존과 구글 등 글로벌 테크기업도 채용 문을 닫고 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1200명 중 약 70%가 실무수습기관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은 상징적이다. 사회 초년생들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발표한 ‘AI 노동인력 추적지표’ 조사는 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고소득 전문직은 AI를 적극 활용해 몸값을 높이지만, 이들을 지원하던 백오피스와 행정·지원 업무는 대체 위험의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와 P&G 등은 지원 부서 업무를 AI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초기 낙관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AI가 기회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와 달리 현실에선 노동과 자본 간 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 산업혁명은 노동자를 공장으로 불러들였지만, AI 혁명은 사무실 내 인간 노동 자체를 줄인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신입사원을 뽑아 현장에서 가르치던 도제식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이런 구조적 변화에 취약하다. 고학력 사무직 비중이 높고 ‘좋은 대학→안정적 사무직→중산층 진입’이라는 성공 방정식이 공고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중간 사무직 진입 구조가 AI라는 벽 앞에서 작동을 멈춰 가고 있다.
관건은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는 기술 속도전이 아니다. ‘무너지는 사다리를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는 설계 능력이다. 글로벌 AI 허브 유치나 ‘모두의 AI’ 정책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공백이다. 실업급여 같은 사후 처방을 넘어 청년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할 수 있는 ‘디지털 도제 시스템’과 노동 전환 프로그램을 시급히 설계해야 한다. 졸업식장에서 야유를 보낸 청년들이 두려워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들이 올라설 사다리가 사라지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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