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김현지'…정권마다 터지는 '그림자 실세' 논란 [정치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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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 사진=연합뉴스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과의 사적 관계를 기반으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그림자 실세', '비선 실세' 의혹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실의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둘러싼 논란이 정권 초반부터 거세게 일면서, 역대 정권의 고질병인 '만사형통' 측근 정치가 다시금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 노태우 '황태자'부터 윤석열 '김건희 라인'까지…반복되는 실세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의 측근이 공식 기구를 우회해 권력을 행사하는 '실세 논란'은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맞물려 모든 정부에서 반복돼 온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과거 노태우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박철언 전 의원이 '황태자'로 불리며 실세로 군림하다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 차남인 김현철씨가 '소통령'으로 불리며 국정 및 인사 전반에 개입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아들들인 '홍삼 트리오'가 친인척 비리와 이권 개입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친형인 노건평씨가 '봉하대군'이라는 별칭과 함께 비리 사건에 연루됐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만사형통'이라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선 실세의 극단적 형태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세 논란이 비교적 옅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3철'이 비공식적인 정무 역할을 수행한다는 비판이 일부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영부인 주변 인사 및 사적 채용 논란이 '김건희 라인'으로 지칭되는 등 실세 논란은 단절되지 않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 출범마다 여러 관계자의 관심이 쏠리는 지점이 바로 '누가 실세냐'는 것"이라며 "실세가 누구인지 빨리 찾는 게 큰 성과로 통할 정도"라고 했다.

◇ "출범 100일 만에 벌써"…李 정부 덮친 김현지 논란

2022년 9월 1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대통령)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현지 보좌관(현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2022년 9월 1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대통령)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현지 보좌관(현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백현동 허위사실공표,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사실공표, 김문기(대장동 의혹 관련으로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모른다 한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있다. / 사진=뉴스1

매 정권 불거지는 실세 논란은 갓 출범 100일을 지난 이재명 정부에서도 김현지 부속실장을 놓고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2000년대 초반 이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설립한 단체 '성남시민모임' 때부터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까지 이 대통령과 30년 인연을 자랑하는 김 실장은 이재명 정부의 복심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서 '만사현통'(모든 것은 김현지 비서관을 통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정권 100일밖에 안 됐지만 벌써 국회가 부르지도 못하는 베일에 싸인 측근 김 실장이 출현했다"고 지적했다.

자당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내준 뒤 별다른 여론 반전을 꾀하지 못하고 있던 야권은 모처럼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는 듯 '그림자 실세' 프레임을 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실장의 출신 학교 등 최소한의 신상조차 알려진 게 없다며 검증을 주장해온 국민의힘은 '김현지 방지법'도 내놓은 형국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이 올해 국감을 '김현지 국감'을 만들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러한 점에서 국민의힘이 국감 출석을 요구했을 때 공교롭게 김 실장의 보직이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장으로 바뀐 점은 국감 출석을 막기 위한 인사라는 의심을 낳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실세 논란'이 정권마다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대통령 의사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권력 집중에서 찾는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중요한 결정이 공식 라인이 아닌 사적인 경로를 통해 이뤄질 때 '그림자 실세'가 활동할 공간이 넓어진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의사 결정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불투명성 때문에 '그림자' 키워드가 정치권에서 쉽게 소비된다"며 "이는 결국 국민의 국정 신뢰를 저해하는 요인이며, 투명하고 제도적인 국정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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