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퇴근 후 연락금지법' 확산…야근 대신할 기업 찾아 삼만리

16 hours ago 5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이른바 ‘연결차단권(Right to Disconnect)’을 법제화한다. 연결차단권은 근로자가 근무 시간 외에 회사로부터 연락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보기술(IT) 발달로 근무 시간 경계가 사라지자 노동자의 정신 건강 악화를 우려해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유럽에선 이 제도를 도입했다.

◇ EU 연결차단권 전면 도입 ‘임박’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지난 7월 ‘연결차단권·공정한 원격근무’에 관한 사회적 파트너(노사) 2단계 협의를 시작했다. EU 집행위가 지난해 진행한 1단계 협의에서는 연결차단권의 최소 기준 등을 논의했다. 이어 다음달 6일까지 기업과 노조 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안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유럽 '퇴근 후 연락금지법' 확산…야근 대신할 기업 찾아 삼만리

일부 국가에선 연결차단권을 도입했다. 2017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연결차단권을 시행했다. 유럽 외 지역에선 호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이 도입했다. 국내에선 고용노동부가 2023년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법제화하지 않았다.

EU의 연결차단권 논의 배경으로는 원격 근무 확산을 꼽을 수 있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EU 기업의 52.9%가 온라인 회의를 했다. 60.2%는 원격 근무를 위한 이메일, 문서, 업무용 소프트웨어 등 ‘3종 원격 접속 서비스’를 직원에게 제공했다. EU 산하 노·사·정 기관인 유로파운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원격·유연 근무가 보편화해 근무 시간 외 추가 작업과 무급 연장 근무가 증가했다”며 “이를 완화하는 해법 중 하나가 연결차단권”이라고 설명했다.

◇ ‘태양 추적’ 모델, 대안으로

연결차단권 확산에 따라 글로벌 기업은 업무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IT 인프라 운영, 금융 서비스, 고객 지원 등 연중무휴 대응이 필요한 분야가 대표적이다. 세계 곳곳의 근로 시간 규제와 연결차단권 도입은 기업의 새로운 제약 요인으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야간에 시스템 장애를 대응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서비스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선 24시간 서비스 운영을 포기하기 어렵다.

이들 기업이 찾은 대안이 일명 ‘팔로 더 선’(Follow-the-Sun·태양 추적) 전략이다. 말 그대로 태양을 따라가듯 지구 곳곳 시간대를 이용해 업무를 이어가는 모델이다. 예를 들어 유럽팀이 퇴근하면 아시아팀이 업무를 이어받고, 다시 북미팀이 넘겨받는 식으로 24시간 중단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웃소싱(업무 위탁)은 이런 ‘태양 추적’ 모델의 핵심 수단이다. 주로 노동법 규제가 비교적 느슨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의 인력을 활용한다. 호주 기업은 연결차단권 법 시행 이후 고객 지원 같은 야간 업무를 필리핀 등의 아웃소싱 업체에 맡기는 사례가 늘었다. 이에 따라 ‘비즈니스프로세스아웃소싱’(BPO) 산업이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BPO 시장 규모는 3026억달러(420조9771억원)로 추정된다.

◇ 남아공 등 BPO 시장서 급부상

BPO 시장 팽창으로 글로벌 아웃소싱 시장 판도도 바뀌고 있다. 기존 BPO 산업 강국인 인도는 영어 구사 능력, IT 발달 등을 바탕으로 여전히 가장 큰 아웃소싱 시장이다. 필리핀은 인도보다 중립적인 영어 발음과 강력한 고객 중심 서비스 문화를 무기로 미국 기업의 야간 고객 지원 업무를 상당수 맡고 있다.

이 시장 도전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시차상 유럽의 야간 업무를 대체한다. 모로코와 케냐는 프랑스·스페인어권 유럽의 BPO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동유럽은 다국어 인재, EU 내 지리적 이점을 내세워 금융·IT 공유서비스 센터를 유치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BPO업계의 인수합병(M&A) 규모도 커졌다. 글로벌 콜센터 분야 1위 업체인 프랑스 텔레퍼포먼스는 2023년 5위 기업인 룩셈부르크 마조렐을 30억유로(약 4조8862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BPO 기업 콘센트릭스는 프랑스 업체 웹헬프를 같은 해 48억달러(약 6조6729억원)에 투자해 합병했다. 7월 프랑스 회사 캡제미니는 인도 기업 ‘WNS 홀딩스’를 33억달러(약 4조5876억원)에 사들였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