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만 찾아오는 구매자"…글로벌 자원 공급망서 신뢰 잃은 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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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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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석유·가스 중심의 실물 비축을 넘어 핵심광물과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아우르는 지경학적 ‘4중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 교수는 20일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국제통상학회, 한국자원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한 ‘2026 제1차 기후경제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포럼은 ‘호르무즈 쇼크와 에너지 지정학-한국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열렸다.

전문가들은 이날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전략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가 단순히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급망 의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서방 선진국들이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청정에너지 공급망 패권은 중국으로 이동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은 비대칭 의존 구조”라며 “서방은 에너지전환이 확대될수록 중국산 태양광·배터리·희토류 공급망 의존이 커지지만, 중국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이 높더라도 석탄·재생에너지·제조업 기반 등 자체 대체수단이 많아 상대적으로 버틸 체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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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이 단순한 매장량 문제가 아니라 정제·가공까지 포함한 공급망 장악력에서 나온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일본도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 호주 희토류 업체 라이너스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실제 어려움은 정제 단계였다”고 말했다. 호주 내 정제시설 구축이 쉽지 않았고,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정제시설을 운영하게 됐다.

이어 “중국은 경쟁 공급망이 등장하면 가격을 낮춰 경제성을 무너뜨리는 전략까지 활용한다”며 “결국 상대국 정부가 손실을 감수하면서 몇 년간 산업을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중국의 희토류 전략이 장기적·제도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2004년부터 희토류 무기화 전략을 장기적으로 추진해왔고, 작년 10월에는 제3국 우회 수출까지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미국이 반도체 제재에 활용했던 역외 통제 방식을 희토류에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도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방향성이 미국 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라며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제도적 거울화’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단순 모방 단계를 넘어 독자적인 수출통제 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로 넘어갔다”며 “과거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정밀한 전략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위기 때만 찾아오는 구매자"…글로벌 자원 공급망서 신뢰 잃은 韓

특히 중국이 ‘금지’보다 ‘허가제’를 활용하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완전 금지는 미국·일본 등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을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며 “반면 허가제를 활용하면 상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일본 대상 희토류 통제에서도 미쓰비시 그룹 전체가 아니라 항공우주 부문만 특정해 제한하는 등 자국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상대국 타격은 극대화하는 방식이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조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에너지 전환이 기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재배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력화·전기화가 과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 위험을 다른 형태로 재배치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을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재생에너지 설비와 핵심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게 되면 새로운 안보 취약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석연료 체제는 원유 공급이 멈추면 바로 위기가 오는 ‘유량 안보’에 가깝지만, 전기화 체제는 설비 구축과 유지·보수, 리파워링이 핵심인 ‘저량 안보’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퓨얼 스위칭(Fuel Switching)’ 기능 약화를 우려했다. 조 연구위원은 “현재는 가스 가격이 오르면 다른 연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전력 중심 단일 체계로 갈수록 오히려 대체 탄력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결국 전력 안보가 전체 에너지 안보가 되는 구조에서 단일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 유조선, 울산 앞바다서 원유 하역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통과 유조선, 울산 앞바다서 원유 하역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기업의 일관된 자원 개발 필요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생존의 핵심은 결국 핵심 기술 확보와 가장 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느냐”라며 “기술은 기업 책임이지만 에너지는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희토류 공급망과 관련해서도 “한국은 쇼티지가 발생하면 비싸게라도 사오겠다는 접근만 반복하고 탐사·채굴·정제 단계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며 “희토류 생산국 입장에서 한국은 위기 때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매자로 인식되는 반면 일본은 탐사부터 가공까지 장기간 투자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승주 교수는 요소수 사태를 사례로 들며 “당시 인도네시아와 수입 다변화 합의를 했지만 중국 수출이 재개되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적이 있다”며 “정부 간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공급망 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르무즈 위기가 완화되면 다시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며 “기업에만 맡겨두면 결국 기존 구조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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