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빚더미 앉았는데…"돈 생각 안 날 정도로 좋았다"

6 days ago 13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리오넬 메시 / 로이터 연합뉴스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리오넬 메시 / 로이터 연합뉴스

라이브 스포츠와 공연을 즐기는 비용이 급등하면서 미국 가계의 여가 지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월드컵과 NBA 결승, 대형 콘서트가 팬들의 저축과 신용 한도를 시험하는 ‘펀(fun)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월드컵 경기장 주차비만 26만원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드컵 경기와 인기 가수 콘서트, 대형 밴드 투어 등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가격이 가계 예산을 압박하고 있다. 팬들은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저축을 깨거나 빚을 내고 있으며, 업계는 더 비싼 티켓과 부가서비스로 수익을 키우고 있다.

버지니아에 사는 안드레아 로하스와 카를로스 라몬 부부는 월드컵 관람 여행을 위해 1년 넘게 돈을 모았다. 그러나 보스턴, 뉴저지, 마이애미에서 경기를 보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거의 1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이들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비슷한 여행을 했을 때 낸 금액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비용은 티켓에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팀별 일정이 발표되기 전 FIFA 공식 재판매 사이트에서 티켓을 장당 800달러에 샀다. 좋아하는 팀 경기를 보려는 시도는 사실상 포기해야 했다. 경기 당일 주차비도 보스턴 인근 질레트스타디움에서 175달러, 마이애미 외곽에서 150달러였다. 렌터카, 호텔, 뉴욕 통근열차 98달러짜리 티켓, 항공권까지 더해지면서 총비용은 크게 불었다.

로하스는 "부부가 열성 팬이 아니었다면 FIFA의 티켓 가격 정책 때문에 보이콧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월드컵이 “수단이 있는 사람이나 엄청난 빚을 질 의향이 있는 사람을 위한 슈퍼볼처럼 변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는 고급화되고 있고, 팬들은 예산보다 ‘놓치면 안 된다’는 심리에 더 크게 반응하고 있다

월드컵뿐만이 아니다. 뉴욕 닉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NBA 결승 티켓은 평균 4100달러에 거래됐다. 매디슨스퀘어가든 좌석은 평균 9000달러까지 올랐다. 시트긱에서 월드컵 경기 재판매 티켓 평균 가격은 장당 약 1084달러였고, 후반 라운드로 갈수록 가격은 더 높았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해리 스타일스 같은 인기 가수 공연과 러시, AC/DC 같은 중장년층 친화적 대형 투어도 고가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NBA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타임스스퀘어에 모인 뉴욕 닉스 팬들 / AP 연합뉴스

NBA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타임스스퀘어에 모인 뉴욕 닉스 팬들 / AP 연합뉴스

열성 팬들에게 가격은 감정적 경험 앞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에든버러의 헬스장 직원 켄지 닥터는 스코틀랜드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영국 정부 저축 프로그램에서 3000파운드, 약 4000달러를 인출했다. 총비용은 거의 9000달러에 달했다. 그는 "경기장에서 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흘렀다며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제업체, 구단 배불리는 고가 티켓

FIFA 측은 다양한 가격대의 티켓을 제공하고 있으며, 월드컵 수익이 비영리 조직의 글로벌 개발 프로젝트 운영에 쓰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팬들이 체감하는 가격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은 티켓업체, 리그, 결제회사, 접객업체에 큰 수익 기회를 주고 있다. 어펌과 클라나 같은 ‘선구매 후결제’ 업체는 팬들이 원래라면 사지 못했을 더 비싼 좌석을 결제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수혜를 보고 있다.

시장 반응도 뚜렷하다. 닉스 구단주인 매디슨스퀘어가든스포츠 주가는 지난 1년간 약 88% 올랐다. 티켓마스터 모회사 라이브네이션 주가도 20% 넘게 상승했다. 여유 있는 고소득층은 큰 부담 없이 돈을 쓰지만, 노동자와 중산층은 주택 구입 같은 전통적 지위 상징이 멀어진 현실 속에서 여가 소비를 새 계산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독주택 마련이 어렵다면 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서 메탈리카를 보는 데 수백달러를 쓰는 일이 덜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현상의 뿌리는 팬데믹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러스 공포로 공연이 취소되고 스포츠 리그가 무관중 경기를 치르며 극장과 식당이 타격을 받은 뒤, 공연장과 경기장이 다시 열리자 사람들은 대규모 군중 속 엔터테인먼트로 몰려들었다. 격리 생활에 지친 대중은 보복소비에 나섰고,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 같은 전 세대에 호소하는 스타들의 메가투어는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런 투어는 장시간 공연, 안무, 불꽃효과, 의상 교체, 첨단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대형 콘서트 표준을 만들었다. 동시에 주나 국경을 넘어 독특한 경험을 찾아가는 ‘콘서트 관광’도 일반화했다. 코로나 시기 외출을 줄이며 쌓인 돈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함께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팬데믹 이후 가수 투어 열풍

음악 산업 구조 변화도 가격 상승을 뒷받침했다. 음반 판매 중심에서 구독형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면서 아티스트들은 최근 수십 년간 투어 수입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됐다. 향수를 자극하는 오래된 밴드와 새롭게 부상한 팟캐스트 스타들까지 라이브 시장에 합류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주식시장 상승으로 고령 가구,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지출 여력도 커졌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티켓 판매 기준 4위 투어는 AC/DC였고, 배드 버니, 레이디 가가, BTS의 뒤를 이었다.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는 “부유층은 거리낌 없이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수요가 임금과 소득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 하위 80%의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어 비용 자체도 인플레이션으로 올랐다. 정교한 봇은 좌석을 빠르게 사들여 되팔고, 공연업계는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티켓을 여러 차례 나눠 풀거나 수요가 높을 때 가격을 올리는 동적 가격제를 활용한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선택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1년 내내 여러 공연을 가기보다 한두 개 행사에 크게 지출하는 방식이다. 플로리다 세브링에 사는 42세 티파니 윌리엄스는 과거 매주 라이브 음악과 코미디 공연을 보러 다녔지만, 지난 1년 동안 간 콘서트는 178달러를 낸 포스트 말론 공연 하나뿐이었다. 그는 “밖에 나가고 싶어도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재향군인의 날 주말 약혼자에게 크루즈 여행과 좋아하는 밴드 러시 공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약혼자는 러시를 택했다. 그는 세 지역 티켓을 검색했고, 먼 좌석 500달러짜리 표는 포기했다. 결국 탬파 공연 티켓 두 장을 978달러에 샀고, 애프터페이에 가입해 월 93달러씩 갚는 결제 계획을 선택했다.

미국 법무부 조사를 받은 티켓 거래 업체 라이브네이션 /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법무부 조사를 받은 티켓 거래 업체 라이브네이션 / 로이터 연합뉴스

높은 공연 비용에 대한 여론 불만은 라이브네이션을 상대로 한 법무부의 대형 반독점 소송으로도 이어졌다. 법무부는 세계 최대 콘서트 프로모터인 라이브네이션이 팬들에게 과도한 요금을 부과하고 공연장에 티켓마스터 플랫폼 사용을 압박했다고 봤다. 연방정부는 사건을 합의로 마무리했지만, 여러 주 법무장관은 소송을 이어갔고 배심 평결에서 승리했다.

라이브네이션은 불법 독점이라는 주장을 부인하며 가격은 공연장이나 프로모터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정한다고 반박했다. 주 정부들은 라이브네이션과 티켓마스터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구제 절차는 아직 진행 중이다.

경험에 큰 돈 쓰는 소비자...재정 압박은 커져

일부 수요 둔화 신호도 있다. 최근 온라인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공연장 좌석표에서 팔리지 않은 정가 좌석을 뜻하는 파란 원을 가리켜 ‘블루닷 피버’라는 말이 나왔다. 일부 아티스트는 예상보다 부진한 판매로 공연을 취소했다. 다만 라이브네이션은 올해 예정된 공연 중 취소된 비율이 1% 미만이라고 밝혔다.

북미 상위 100개 투어 매출은 총 19억달러로 지난해와 같았다. 폴스타 집계다. 시트긱의 6월 23일까지 1년간 평균 재판매 가격은 203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206달러와 거의 같았고 판매량은 20% 늘었다.

업계 임원들은 팬데믹 이후 수요가 꺾이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일부는 소규모 공연장의 저소득층 지출이 줄어든 점은 인정한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며 공연일이 가까워질 때까지 티켓 구매를 미루고 있다.

스포츠·라이브 음악 대기업 AEG가 보유한 티켓서비스 AXS의 브라이언 페레스 최고경영자는 "팬들이 단순 관람보다 경험을 원하고 있으며, 빠른 입장이나 더 독점적인 관람 구역 같은 VIP 선택지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팬인 37세 정부 커뮤니케이션 직원 캐런 데이탱글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그는 친구와 함께 12월 오클랜드아레나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티켓마스터에 접속했다. 자신은 대기열에 묶였지만 친구가 무대에서 먼 좌석 두 장을 장당 261달러에 찾았다. 친구는 포기했지만 데이탱글은 결국 다른 친구가 예약한 스위트석 한 자리에 400달러를 내기로 했다. 그는 콘서트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과 추억 일부를 만들어줬다며 그 가격이 가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쟁점은 고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가 어디까지 가계 지출을 흡수할 수 있느냐다. 최상위 팬덤과 평생 한 번뿐인 행사는 여전히 강한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할부와 저축 인출에 의존하는 흐름이 커질수록 ‘즐거움’의 가격 상승은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소비 양극화와 가계 재정 압박을 보여주는 경제 지표로 남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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