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미국 뉴저지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미국적인 장면이 펼쳐질 전망이다. 마돈나와 샤키라, K팝 그룹 BTS가 출연하는 하프타임 쇼에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까지 등장한다. 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축구 산업이 거대한 비즈니스로 성장했지만 일각에서는 축구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경기장 밖에서부터 축구 업계를 바꿔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미국 자본은 수십억 달러를 유럽 축구에 투입해 구단 운영 방식과 재무 구조, 수익 모델을 미국식으로 재편했다는 것이다.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은 유럽 축구 클럽 117개를 소유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절반 이상, 이탈리아 세리에A의 3분의 1 이상, 프랑스 리그의 4분의 1 이상이 미국 자본의 영향권에 있다. 유럽 대표 명문 구단들 역시 미국 투자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미국 자본의 본격적인 진출은 2005년 글레이저 가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에서 시작됐다. 이후 리버풀, 아스널, AS로마 등 주요 구단들이 잇따라 미국 자본에 넘어갔다. 특히 미국·캐나다· 멕시코가 2026년 월드컵 개최권을 확보한 2018년 이후 투자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20여 개 수준이던 미국 소유 유럽 구단 수는 현재 4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미국 스포츠 시장과 비교하면 구단 가치가 낮아 미국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NBA 구단 가치는 평균 매출의 14배 이상에 거래되는 반면 유럽 주요 축구 구단은 4배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미국 자본의 진출을 가속화했다. 유럽 축구계는 경기 수입 감소로 약 43억유로의 손실을 봤고, 상당수 구단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재무구조가 악화한 구단들은 새로운 자본이 필요했고 미국 투자자들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미국 투자자들은 축구가 아직 충분히 상업화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에 유럽 구단들은 VIP석 확대, 복합 문화공간 조성, NFL 경기 및 콘서트 유치 등 미국식 수익 모델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역시 월드컵에 미국식 요소를 접목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후반마다 3분간의 휴식 시간이 도입되는데 이는 폭염 대응뿐 아니라 광고 판매 시간을 확보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보다 크게 오른 입장권 가격 또한 미국 시장 관행에 맞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FIFA는 이번 월드컵을 포함한 4년 주기 수익이 1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카타르 월드컵 대비 72% 증가한 규모다. 미국 여자프로축구(NWSL) 신생 구단의 몸값은 최근 2억5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불과 2021년만 해도 구단 가치는 200만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국식 축구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럽 팬들은 축구를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화로 여기는 반면 미국 투자자들은 구단을 수익 창출이 가능한 자산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일부 구단 팬들은 공동 시위를 벌이며 미국 투자자들이 구단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자본이 유럽 축구의 만성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UEFA에 따르면 유럽 축구 구단들은 지난해 300억유로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전체적으로 10억유로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가 가장 큰 5개 구단 가운데 4곳은 미국 자본이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한 구단이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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