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의자 절반이 20·30대
SNS 구직플랫폼 광고에 속아
범죄인지 모르고 연루 ‘몸빵’
‘고수익 알바’ ‘고액 꿀알바’ ‘단순 업무·초보 가능’ ‘대학생·직장인 부업 환영’.
올 상반기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중 절반 이상이 20·30대 청년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부분은 구인·구직 플랫폼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이스피싱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전달책 등으로 활용된 뒤 경찰에 적발되면 버려지는 방식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범죄 조직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범행을 저지르고 영토를 넓혀가는 배경에 이 같은 청년들의 ‘몸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1만5286명 중 53.7%(8212명)가 30대 이하 청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일원인지도 모른 채 경찰 수사망에 걸려 붙잡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검거 인원을 역할별로 분류해보면 대면편취책, 인출책, 절취책 등 하부 조직원이 56.5%(8644명)로 가장 많았다. 계좌 명의인, 통신업자, 환전책 등 기타가 41.3%(6313명)로 뒤를 이었다. 검거된 인원 중 총책, 관리책, 텔레마케터 등 조직 관리자는 2.2%(329명)로 소수에 불과했다. 20·30대가 현장에서 범죄 조직이 짜놓은 시나리오의 손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SNS나 알바몬·알바천국 등 구인·구직 플랫폼을 통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입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고액·고수익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홍보해 청년을 유인한 후 현금 전달책 등 임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더 적극적인 범죄 조직은 인터넷에 업로드된 이력서를 검토한 후 직접 접근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간단하게 서류나 상품권을 전달하는 퀵서비스를 생각하면 된다’ ‘하루 총 8시간 일하면서 수습 기간엔 1건당 8만~9만원을 주고, 2주 후 정직원이 되면 1건당 13만원을 준다’ ‘교통비는 물론 식대도 따로 제공한다’며 꾀어냈다. 추후 전달하는 게 ‘돈’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면 “세금 때문에 그러는 거다” “원래 그렇게 거래처 대금을 지급한다. 별일 아니다”며 회유하는 식이다.
과거 보이스피싱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월 1000만원을 보장한다는 글이 올라온다”며 “돈을 벌려고 보이스피싱 조직인 줄도 모르고 연락하는 청년이 많은데, 나중엔 범죄인 걸 알게 돼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 비대면 거래 등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거래처 대금 등을 현금으로 전달하라는 지시는 보이스피싱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은 검거된 뒤 ‘범죄인지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단순 가담만으로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이 범죄임을 몰랐어도 사기방조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황에 따라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조직의 관리자가 붙잡히지 않는 이상 아르바이트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청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총책 등 보이스피싱 조직 관리자는 중국, 태국, 베트남 등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 잡기가 쉽지 않다”며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검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