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하청 단체교섭의 경계를 가를 전원합의체 판단을 내놓는다. 원청이 하청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산업계 최대 쟁점에 관한 대법원 최종 판단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원청이 하청 노조와 교섭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사용자성을 대폭 확대한 노란봉투법과 맞물려 산업계 전반에 노무 리스크가 크게 확산할 수 있다.
대법 전합, 오는 20일 '원하청 교섭' 최종 결론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는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지난 3월10일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뒤 원청 사용자성에 관한 첫 대법원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번 판단은 개정법이 아니라 '구 노동조합법' 기준으로 이뤄진다. 소송은 2017년 제기됐고 1·2심도 2018년에 이미 선고됐다. 대법원이 개정법 시행 이후 판결을 내리지만 법원이 들여다보는 법리는 개정 전 노동조합법에 규정된 사용자 개념이다. 이 때문에 노란봉투법 조문을 적용한 판단이라기보다 '개정 이전 법에서도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 상대가 될 수 있는지'를 가리는 셈이다.
이 사건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근로자들로 조직된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노조 측은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원청도 사내하청 노조와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 것.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 근로자들과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내하청 노조가 단체교섭 청구 소송을 낸 이유다. 대법원은 원청이 사내하청 노조와 노조 활동, 산업안전, 고용보장 등의 사항에 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를 쟁점으로 보고 있다.
1·2심은 "원청, 교섭 의무 없어"…임금 구조 등 주목
1심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단체교섭 제도는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계약의 내용을 집단적으로 형성·변경할 수 있는 기능과 가능성을 본질로 한다"고 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와 적어도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다고 평가될 정도의 사용종속관계에 있어야 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1심은 사내하청업체들이 별도 급여체계를 갖춘 데다 독자적 취업규칙·인사관리규정을 운영해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왔다는 데 주목했다. 사내하청업체가 독자성·독립성을 잃은 명목상 존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HD현대중공업이 실질적 사용자란 노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같은 해 11월 열린 2심도 1심 판결에 불복한 노조 측 항소를 기각했다. 2심에선 특히 임금 결정 구조를 살폈다. 노조는 원청이 공사도급계약상 공사대금을 통해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임금을 사실상 결정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은 공사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사내하청업체에게 지급했을 뿐,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하거나 임금구조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청 근로자 임금이 공사대금에 어느 정도 의존하더라도 원청이 임금에 대한 지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원하청 교섭' 인정 땐 성과급 등 하청 노조 요구↑
이번에 나올 대법원 전합 판결은 결론에 따라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원하청 교섭이 인정된다면 기업들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개정 전 법을 기준으로도 원하청 교섭이 인정될 경우 원청의 사용자성을 대폭 확대한 노란봉투법 아래에선 기업들이 하청 노조들의 분출하는 교섭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장 유사 분쟁을 겪고 있는 CJ대한통운·현대제철·한화오션와 같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다수 기업이 원청 사용자성을 놓고 분쟁을 겪고 있는 만큼 판결 문구 하나하나가 교섭 상황을 좌우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난 3월10일 이후 이달 8일까지 약 두 달간 하청노조 1101곳이 원청 408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속 조합원 수는 15만18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원청 사업장은 38곳에 그쳤다. 원·하청 교섭이 법과 현장 사이에서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는 얘기다.
원·하청 교섭 요구는 단순 교섭 여부를 넘어 성과급 분쟁으로도 번졌다.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협력업체 노조는 원청 직원과 성과급을 차별하지 말라면서 SK하이닉스에 교섭 요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이 원청의 교섭 의무를 넓게 인정하면 산업안전·고용보장 의제를 포함해 성과급·복리후생 등을 둘러싼 하청 노조 교섭 요구가 한층 더 거세질 수 있다. 반대로 하급심과 같은 판단을 내놓을 경우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확산한 하청 노조 교섭 요구도 신중한 법적 검토를 거쳐 진행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일정 수준 제동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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