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협력 위해 발명돼
무리 지어 살던 초기 인류
생존 위해 선악 기준 세워
사회 발전하며 협력 범위 확대
불평등·불안 커진 현대사회
우리와 그들 구분 다시 강해져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 확산
오늘날 전 세계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뉴스 댓글창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짧은 영상,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앞세워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하다. 공존의 규칙이어야 할 도덕이 도리어 사회를 분열시키는 도구로 쓰이는 상황이다. 인간은 왜 이토록 치열하게 대립하며, 갈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윤리학 교수인 하노 자우어는 신간 '선악의 발명'에서 도덕을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더 큰 규모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장치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인류 진화사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며, 선과 악 그리고 미덕의 기준이 사회 규모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한다.
500만년 전 사바나 환경의 초기 인류는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내 집단 중심의 협력을 시작했다. 당시의 이타심은 '우리'에 국한된 집단 지향적 성격이 강했다. 50만년 전 집단 규모가 커지며 무임승차자가 나타나자, 인간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처벌과 제재라는 규범을 만들어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인류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끈 주된 동력은 5만년 전 시작된 문화적 진화였다.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세대를 거쳐 전승되면서, 집단의 공유 가치는 구성원 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기준이 됐다. 이후 5000년 전 농업혁명과 문명의 발달로 인구가 폭발하자 정착 생활에 따른 잉여 생산물이 생겼고, 이는 엄격한 계급과 위계질서로 이어졌다. 불평등의 규모가 이전보다 거대해지면서 이에 대한 반감과 억압에 저항하는 심리 역시 공동체 내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전환점은 500년 전 서구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개인주의적 인간형이 등장했고 이는 근대화와 경제 성장, 정치적 해방으로 이어졌다. 지난 50년 동안에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라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도덕의 범위가 인종과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로 확대됐다.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의 지위가 향상됐다.
문제는 최근 5년간 가속화된 퇴행이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모순된 약속이 기대만큼 빠르게 실현되지 않자 좌절과 분노가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본능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지키려 하며, 불평등과 불안이 커질수록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경향도 강해진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현재의 분열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쌓아온 도덕적 요소들이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결합하며 나타난 결과이며, 정치적 양극화는 도덕의 붕괴가 아니라 도덕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는 극복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그렇다고 본다. 정치적 신념은 피상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부족한 정보에 기반하기에, 우리는 동일시할 수 없는 사람을 불신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가르는 것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 저자는 노예제를 그 사례로 든다. 과거 노예제를 당연한 제도로 받아들인 사회에서도 그 잔혹함을 직시하며 이를 부끄럽고 비난받아야 할 관행으로 여긴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규범을 만들어왔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불의를 문제 삼는 상식적 연민 역시 꾸준히 이어져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류는 수많은 후퇴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도덕적 공동체의 범위를 넓혀왔다. 여성과 소수자까지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인 과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책은 차이보다 공통된 인간성과 가치에 집중할 때 공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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