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무너진 사랑 … 질투가 만든 외로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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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무너진 사랑 … 질투가 만든 외로운 비극"

입력 : 2026.06.21 16:28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산투차役 소프라노 임세경
산투차는 피해자이자 가해자
연민 넘어 양면성에 주목해야
사랑·분노·절망 오가는 무대
짧은 시간에 가장 큰 감정 변화

소프라노 임세경이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공연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재훈 기자

소프라노 임세경이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공연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재훈 기자

"관객들이 산투차를 불쌍한 여자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비극을 밀어붙이는 가해자의 얼굴을 지닌 인물이죠. 그런 인간의 양면성을 발견한다면 작품은 훨씬 흥미로워질 겁니다."

소프라노 임세경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여주인공 산투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버림받은 여인, 질투에 사로잡힌 연인, 끝내 파국을 불러오는 인물. 임세경이 바라본 산투차는 단순한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라 사랑과 분노, 절망과 복수가 한 몸 안에서 뒤엉킨 복합적인 인간이다.

임세경은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주역을 맡은 성악가다. 그는 다음달 3~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솔오페라단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산투차로 관객과 만난다. 산투차는 연인 투리뚜의 외도를 알게 된 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인물이다.

1890년 초연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 투리뚜는 옛 연인 롤라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롤라는 이미 알피오와 결혼한 상태다. 투리뚜가 롤라와 다시 관계를 맺자 투리뚜의 현재 연인 산투차는 배신감과 질투에 사로잡혀 결국 알피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분노한 알피오는 투리뚜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이를 받아들인 투리뚜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결국 알피오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둔다.

임세경은 산투차를 "비극의 희생자이자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산투차는 버림받은 가난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분명 피해자"라면서도 "하지만 알피오에게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결국 투리뚜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연민만으로는 붙잡히지 않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가 오랫동안 무대에서 불러온 '나비부인' '아이다' '토스카'의 여주인공들과 비교해도 산투차는 유독 외로운 인물이다.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의 사랑을 받고, 아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 나비부인의 초초상도 죽음 앞에서 아들을 통해 사랑의 흔적을 확인한다. 그러나 산투차에게는 그런 위안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산투차는 아무에게도 온전히 사랑받지 못해요. 질투에 무너지고, 결국 자기 손으로 비극을 불러오죠. 그래서 저는 이 인물이 가장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은 라벨의 희극 오페라 '스페인의 시계'와 함께 더블 빌 형식으로 오른다. 익살스럽고 유쾌한 작품 뒤에 곧바로 격정적인 비극이 이어지는 만큼, 무대의 정조와 감정의 낙차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임세경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부활절 아침에 시작해 하루 안에 모든 사건이 끝나는 작품"이라며 "사랑과 질투, 분노와 절망, 죽음까지 감정의 변화가 매우 빠르게 몰아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22년 넘게 이탈리아에서 생활해온 시간도 산투차를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산투차가 투리뚜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는 설정이 더해졌다. 임세경은 "왜 떠난 남자를 포기하지 못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탈리아 남부에는 지금도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며 "그런 배경을 알고 나면 이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무대에 올린 작품도 그에게는 매번 새롭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작품을 다시 맡을 때마다 새 악보를 사는 습관도 그래서 생겼다. 임세경은 "처음 공연할 때 고민했던 부분, 감정선, 실수했던 지점들을 악보에 적어둔다"며 "시간이 지나 같은 작품을 다시 만나면 제가 달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의 초초상과 지금의 초초상은 같은 가사를 불러도 무게가 다르다"며 "삶이 쌓이면 인물도 다르게 보이고, 노래의 색도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임세경은 한양대를 졸업한 뒤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솔리스트 전문 연주자 과정을 거쳤다. 현재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며 무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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