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면옥·을지면옥·을밀대 노포마다 긴 줄… 역대급 폭염에 비싸도 먹는다
“을밀대 줄 서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 각오하고 나왔지만 생각보다 줄이 더 기네요.”
김 씨의 푸념이다. 그는 “여기를 20년 넘게 다녔는데, 요즘 2030 젊은이들까지 평양냉면 맛을 알아버려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건 익숙… 그런데 어른도 많네요”이날 을밀대 앞에 줄을 선 사람 중에도 3분의 1 정도는 20대로 보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랑 같이 왔다는 한 대학생은 “대기 줄에 어른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했다.
“요즘 인기 있는 곳에 가면 다 줄을 서잖아요. 식당이든 카페든 갤러리든. 주위에 평냉(평양냉면) 얘기를 하는 친구가 많아서 먹어보러 왔는데, 어른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웃으며 말하는 얼굴이 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양냉면은 심심한 육수와 뚝뚝 끊기는 메밀면이 특징인 여름 요리다. 자극적인 함흥냉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호 계층이 좁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명 방송 프로그램 등에 조명되며 빠르게 대중화됐다. 최근엔 인스턴트 제품과 밀키트까지 출시될 만큼 인기다. ‘평냉 마니아’를 자처하는 청년도 적잖다. 을밀대 물냉면 가격은 1만6000원. 지난해보다 1000원 올랐지만 인기에는 전혀 영향이 없어 보였다. 곧이어 서울 중구 우래옥으로 향했다. 1946년 문을 연 이곳은 서울의 평양냉면 명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낮 12시 정각, 우래옥 앞에 쳐놓은 그늘막에는 20여 명이 모여 앉아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땡볕 아래 길게 줄이 늘어섰던 을밀대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우래옥은 2022년 매장 정문 앞에 대기 시스템을 설치했다. 기기에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대기번호를 발급하고, 앞에 남은 인원 정보를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는 방식이다. 기기 옆 커다란 스크린에는 ‘현재 130팀 대기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늘막에 있던 80대 남성은 “기계에 전화번호 넣는 거 정도는 누구나 하잖아”라면서 “줄 안 서고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니까 훨씬 편해”라고 말했다.
1만6000원 가격에도 인파 붐벼
우래옥 단골들에 따르면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원격 대기’를 하는 것도 허용됐다. 하지만 젊은 층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와 곧 금지됐다고 한다. 평양냉면이 아무리 폭넓은 세대의 사랑을 받아도 여전히 주류 고객은 장노년층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2년 냉면 가격을 1만6000원으로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우래옥은 3년째 같은 값을 받고 있다.
서울 평양냉면 맛집 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을지면옥은 지난해 종로구 5층 건물로 장소를 옮겨 재개장하며 대기시간이 크게 줄었다. 2인석도 많아져 붐비는 점심시간에 ‘혼밥’을 해도 눈치가 덜 보인다. 저녁에는 냉면 육수를 안주 삼아 한 잔 기울이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7월 8일 저녁 7시, 기습 폭우를 뚫고 들어간 을지면옥에서 1만5000원짜리 물냉면 하나, 소주 한 병을 주문하는 20대 남성을 만났다. “퇴근길 가볍게 반주하기 딱 좋은 메뉴”라고 말하는 그의 옆 테이블에서는 중년 직장인 3명이 편육을 앞에 놓고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7호에 실렸습니다》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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