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가 지난 12일 5%대 '반짝 급등'하면서 주주들 사이에서 '6만전자'(삼성전자 주가 6만원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선 미·중 간 관세 합의로 인해 '정책 리스크'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데다 메모리 가격 상승까지 겹치는 구간이 시작돼 반도체 업종에 대한 비중을 늘려야 할 타이밍이라고 분석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 주가는 직전일 대비 5.11% 오른 5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5만5200원에서 상승 출발한 뒤 지속적으로 상단을 높였다. 삼성전자 주가가 5만7000원대에서 장을 마감한 건 지난달 15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주가 상승은 외국인과 기관이 이끌었다. 외국인과 기관은 전날 하루 삼성전자 주식을 각각 1630억원과 167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날 주가 상승은 엔비디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 칩보다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칩을 내놓을 것이란 소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새 AI 칩은 오는 7월 출시 계획이며, 이미 중국 내 고객사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AI 칩의 사양이 낮을수록 구형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AI칩 'H20'에 들어가는 구형 제품인 HBM3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엔비디아 칩의 사양이 낮아지면 HBM3의 수요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정부에서 마련한 AI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 대신 중국 우회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규제 정책을 내놨는데, 이 정책이 시장에선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동맹국에 대한 수출 제한은 없앴지만, 일반 국가에 속하면 수출 상한선을 정한 데다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 수출은 통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우려 국가에는 저사양 AI칩만을 수출토록 규제했다. 이에 엔비디아에 칩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심이 악화됐다.
미·중 간 관세 인하 합의로 메모리 등 IT수요 감소 우려가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주가를 밀어올린 배경이다.
앞서 전날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고위급 통상 회담에서 90일간 고율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현재 145%인 대중국 관세를 30%, 중국은 125%인 대미 관세를 10%로 일시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이날 새벽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엔비디아(5.44%)를 필두로 반도체주가 일제히 상승했다. 브로드컴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 주가는 각각 6.43%, 5.93% 올랐다. AMD와 퀄컴의 주가도 5.13%, 4.78% 각각 상승했다. 반도체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7.04% 급등했다.
이수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 합의로 인해 정책 리스크 완화와 AI 수요 재가속 등이 동시에 겹치는 구간으로 반도체 비중을 높여야 하는 타이밍"이라며 "90일 후에 재협상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동향을 계속 살필 필요는 있으나 중단기로 반도체 업종이 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메모리 가격을 인상하면서 하반기 실적 기대감을 높였다는 점도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주요 고객사와 D램 공급 가격 인상안을 확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객사마다 구체 내용은 상이하지만, 평균 인상률은 DDR4 D램이 두 자릿수대, DDR5 D램은 한 자릿수대로 결정됐다. 삼성전자가 D램 가격을 올린 건 올 들어 처음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그동안 수요 부진에 내림세를 나타냈던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을 기점으로 반등했다. 지난달 PC용 DDR4 8Gb(1Gx8 2133MHz) 가격은 전월 대비 22.2% 증가했다. 고정거래가격이 오른 건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업계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담이 커지기 전에 미리 D램을 확보하려는 PC·모바일·서버 제조사들의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삼성전자 1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글로벌 관세 변화 우려로 세트(완제품)의 프리빌드(사전 재고 비축)가 확대돼 고객사 부품 재고가 당초 예상 대비 빠르게 소진됐다"고 밝힌 바 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