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홀리우드의 작은 마을에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은 2살때 골프 클럽을 처음 잡았다. 4살때 집 복도에서 세탁기에 칩샷으로 공을 집어넣으며 놀던 아이는 방에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50·미국)의 사진을 잔뜩 붙여놓을 정도로 그를 동경했다. 열살이 된 어느날, 우즈에게 편지로 선전포고를 했다. "내가 당신을 잡으러 간다. 지켜봐라."
소년은 자신의 말을 이뤄냈다. '골프신동'으로 TV에 출연하고, 주니어 대회를 휩쓴 아이는 18살에 프로로 전향한 뒤 단숨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프로로 활동해온 18년간 메이저대회 4승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만 28승, 개인 통산으로는 39승을 따냈고, 우상이었던 우즈와 투어에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바로 세계랭킹 2위, '차세대 황제' 로리 매킬로이(36)다.
매킬로이가 오랜 숙원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앞두고 있다.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 유독 이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올해는 다르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가까이 다가선 매킬로이가 '꿈의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타이거 우즈가 인정한 완벽한 스윙
올해 매킬로이는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PGA투어 5개 대회에 출전해 벌써 2승을 거뒀고, 최근 출전했던 텍사스 칠드런스 휴스턴 오픈에서 공동 5위를 기록하며 우즈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총상금 1억달러를 돌파한 골프선수가 됐다. 2년 전 마스터스 대회에서 커트 탈락하고, 지난해 US오픈에서 1m 짜리 퍼트 실수로 우승 기회를 놓친 아픈 기억이 많았지만 올해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킬로이의 가장 큰 매력은 아름답고 완벽한 스윙이다. 키 175cm, 운동선수로는 크지 않은 체구로 330야드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장타를 선보인다. 특히 단단한 하체와 유연한 상체로 만들어낸 꼬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윙은 가장 완벽한 시퀀스라고 평가받는다. 임팩트 이후에도 완벽한 밸런스로 피니시를 유지하는 모습은 모든 골퍼들의 로망이다. '황제' 우즈가 자신의 아들 찰리에게 "내 스윙 말고, 로리의 스윙을 보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불 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201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도럴GC에서 열린 월드골드챔피언십(WGC) 캐딜락챔피언십에서 세컨드샷이 해저드에 빠지자 3번 아이언을 물 속에 던져버렸다. 2022년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퍼터를 집어던지고, 웨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화끈함은 그의 경기를 더욱 다이내믹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워낙 힘이 좋고 비거리가 길기에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기는 시원한 샷을 종종 선보인다. 18년째 맞는 프로생활 동안 적잖은 기복을 겪었고, 그에게는 뒷심 부족, 퍼트 불안, 멘탈 취약 등 다양한 평가가 따라다녔다. 그래도 어느 순간 그는 다시 정상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라이벌 셰플러에게 배운 '절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은 올해, 매킬로이는 스스로도 "좀 더 나은 선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불안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난달 시즌 두번째 우승을 올린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연장전을 앞두고 그랬다.
선두 J.J스펀에 4타 뒤진채 최종라운드에 나섰던 그는 초반부터 매서운 플레이로 몰아붙였다. 스펀이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하면서 한때 3타차 선두로까지 달렸지만 후반에 따라잡혀 동타를 허용했다.
이날 경기가 낙뢰 등 악천후로 중단되는 시간이 있었던 탓에, 연장전은 이례적으로 이튿날 아침 열렸다. 스펀과 매킬로이의 맞대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표현까지 나왔고, 승부 역시 싱겁게 매킬로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많이 긴장됐다"고 돌아봤다.
새벽 3시에 눈이 떠진 그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연장전을 약 3시간 앞둔 오전 6시께 경기장에 나섰다. 18개홀 정규라운드를 돌 때처럼 운동하며 몸을 풀었고, 샷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3개홀에서 진행된 연장전에서 완승을 거뒀다.
올 시즌 매킬로이가 가장 달라진 것은 경기운영이다. 파워풀한 장타를 앞세워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그이지만, 올 시즌 들어서는 실수를 줄이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신의 라이벌인 스코티 셰플러(28·미국)를 참고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 우승 이후 "셰플러를 존경한다. 그와 함께 라운드를 돌거나 그의 경기를 볼때마다 그의 철저한 플레이 스타일에 감탄했고, 그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배워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2년 연속 투어 정상에 군림한 셰플러의 성공비결을 분석하고 본받으려 했다는 설명이다.
매킬로이가 주목한 것은 '절제'였다. 그는 "저는 가끔 경기 중에 충동적으로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는데 셰플러는 그런 부분이 없는 것 같았다"며 "그래서 저도 충동적인 판단을 자제하고 좀더 절제된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설명은 그의 플레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연장전 첫번째 홀이었던 16번홀(파5)에서 매킬로이는 두번째 샷에서 핀을 곧바로 공략하기 보다는 피칭웨지를 잡고 그린에 올리는 데 집중했다. 2온에 성공한 그는 10m 이글 퍼트에는 실패했지만 침착하게 1.5m 버디를 잡아내며 스펀을 기선제압했다.
◆역대 6번째 커리어그랜드슬램 달성할까
매킬로이는 현재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토너먼트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2011년 US오픈과 2012년 PGA 챔피언십, 2014년 디오픈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지만, 마스터스에서는 아직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마스터스 우승만 추가하면 생애 동안 4개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진 사라센, 벤 호건, 개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단 5명이다.
이번주 텍사스 발레로 오픈을 건너뛴 그는 플로리다 자택에 머물며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다소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팔꿈치를 치료하고 스윙을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일찌감치 오거스타 내셔널GC를 답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 헬레네의 영향으로 코스에 달라진 점이 있는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경쟁자는 역시 세계랭킹 1위 셰플러다. 올 시즌은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이지만, 마스터스에서 벌써 2승을 거둔 강자다. 수퍼컴퓨터 역시 이번 대회 우승자로 셰플러를 지목했다.
매킬로이가 반전을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않다. PGA 투어 출신으로 방송 해설가로 활동 중인 폴 맥긴리는 최근 미국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매킬로이는 진화하고 있다. 벌써 2승을 거둔 만큼 큰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의 목표에 점점 다가서는 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력한 경쟁자인 셰플러와 세계3위 잰더 쇼플리(미국)가 부상의 여파로 아직 완벽한 컨디션이 아니라는 점도 매킬로이에겐 기회다.
장비와의 궁합도 맞춰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 3라운드를 마친 뒤 도중에 드라이버를 바꾸는 승부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테일러메이드의 신형 드라이버 Qi35를 들고 대회에 출전했지만 내내 퍼포먼스가 성에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3라운드를 마친 뒤 우버 기사를 통해 300㎞ 떨어진 집에 보관하던 기존 드라이버를 가져욌고, 최종라운드에서 매킬로이 다운 플레이를 펼쳤다.
직전 대회였던 텍사스 칠드런스 휴스턴 오픈 때도 드라이버를 손봤다고 털어놨다. 드라이버로 컷 샷을 쳤을 때 왼쪽으로 날아가는 경향이 발견돼 드라이버 로프트를 약간 낮췄다는 매킬로이는 조정한 뒤부터는 바람 속에서도 볼이 더 잘 날아갔다고 한다.
완벽한 스윙, 그럼에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매 순간 진화하는 매킬로이. 이번 오거스타 내셔널GC에서 그는 그린재킷을 입을 수 있을까.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